* 역사/ TransKorean

인도네시아 화교 리디아 윗조조(Lidya Widjojo)의 한국생활

사이박사 2009. 6. 12. 09:05

“삶은 여행과 같아요”
인도네시아로 돌아갈 준비하는 리디아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박정선영
“삶은 여행과 같아요. 저는 2년 전에 무작정 한국으로 왔어요. 이 곳에서 한국 문화를 경험하며 제 인생이 더 성숙했다고나 할까요. 마치 잘 익은 김치처럼요. 이제 곧 한국을 떠나지만 다시 올 생각이에요. 한국은 독특한 매력이 있는 곳이거든요. 정이 많은 한국 친구들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Don’t worry. Be happy!”

리디아 윗조조(Lidya Widjojo, 24)는 마주 앉은 이를 즐겁게 만드는 재주를 타고 난 듯 하다. 그의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런 점 때문일까. 리디아는 불가항력으로 상대방을 웃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 와서 처음 배우기 시작했다는 한국어는 그의 성격만큼이나 귀엽고 활기차서 계속 한국어로 말을 걸고 싶어진다.

TV를 볼 때도 그의 호기심을 잘 확인할 수 있다. TV 드라마에서 “이런 곰탱이” 라는 대사가 나왔다. 그 즉시 리디아는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으로 옆 사람을 쳐다본다. “곰탱이가 곰 친구 같은 거야? 무슨 뜻이야?” 어찌 이 귀여운 아가씨의 질문을 외면할 수 있을까. 아는 지식, 모르는 지식 다 동원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고 싶어진다.

리디아는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No’ 라는 대답을 하지 않기로 유명하다. 때문에 친구들은 고민이 있을 때마다 속이 깊은 그에게 달려간다고 한다. 좋은 일이든, 안 좋은 일이든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으로 리디아를 꼽는다. 사람의 마음에 모든 일이 달려있다는 생각을 일찌기부터 터득했다고 할까. 리디아는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누구든 그에게 가서 얘기하다 보면 스스로가 해답을 찾게 되면서 기뻐하게 된다. 그의 생활은 항상 “Don’t worry. Be happy.”로 주파수가 맞춰져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그의 재산은 바로 사람을 끄는 힘인 것 같다.

딸을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던 아버지

그에게 국경은 비행기를 갈아타는 곳에 불과한 듯 했다. 사람을 만나서 마음이 통하면 그만이지 왜 어디서 왔는지, 피부색을 따지는지 모르겠단다. 이 열린 마음은 지난 10년 간의 여행이 가져다 준 대가이다.

미국, 캐나다, 중국, 한국, 싱가폴을 오가는 이 자유로운 여행자는 20대 초반에 벌써 ‘삶이 곧 여행’이라는 생각을 깊이 했다고 한다. 그래서 딱히 조바심 낼 일도 누구를 미워하거나 슬퍼할 필요도 없단다.

그는 인도네시아 화교다. 부유한 동남아 화교를 먼저 상상하면 오해다. 가난했던 조부모님은 인도네시아 도로가 금으로 깔려있다는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혹해서, 배를 타고 인도네시아로 건너 오셨다고 한다. 실제 중국의 실크로드가 인도네시아까지 뻗어 있었다고 자랑스러워 하니, 믿어 줄 수밖에 없다. 조부모님은 인도네시아시아에서 온갖 차별을 견뎌가며 인도네시아에 뿌리 내렸다. 인도네시안 무슬림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들이 정착과정에서 받았던 차별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인종차별주의자들이 화교학교를 다 태우는 바람에 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어요. 저는 사실 인도네시아 화교 사회는 잘 알지만 인도네시아에 대해서는 잘 몰라요. 어렸을 때부터 무서워서 혼자서 버스나 택시도 타 본적이 없거든요. 중국인이라서 강도를 당하지나 않을까 늘 걱정을 했어요. 인도네시아에서는 흔한 일이에요.”

이렇게 대를 이어온 차별 때문에 그의 오빠와 언니는 인도네시아시아에서 머물지 못하고, 싱가폴로 떠났다. 자식들에게 가난 대신 자유로운 삶을 물려주겠다는 부모님의 신념 때문이었다. 그리고 중국인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사는 싱가폴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자리를 잡았다.

집안의 막내인 리디아는 혼자서 캐나다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녔다. 그의 아버지는 인도네시아에서 많은 차별을 받으며 유학을 꿈꿨다고 한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포기했는데, 막내딸은 차별받지 않는 땅에서 마음껏 공부를 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리디아를 혼자 캐나다로 보냈다고 한다.

어머니와 중국어로 대화하게 되다

“캐나다는 이민자들의 국가라고 하잖아요.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제 삶의 폭이 더 넓어지고 깊어지는 시기였어요. 처음에는 기숙사에서 사는 게 외롭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과 가족처럼 친해졌어요.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법도 이때 터득했고요. 호텔경영학이 제 전공이었는데 외향적인 제 적성에도 잘 맞았어요. 무엇보다 아무 걱정없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너무 감사했어요.”

리디아는 한국에 오기 전 중국에서 1년 반 동안 머물렀다. 그의 어머니가 “중국어를 배워 중국인으로서의 뿌리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권했기 때문이다. 리디아는 한번도 중국에 가본 적이 없었지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품에서 ‘길거리에서 국수를 팔아가며 돈을 모았다’는 조부모님 이야기와 중국 역사, 중국 문화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고 한다. 조부모님 시대에 비록 가난 때문에 중국을 떠났어도 그들 가족의 역사 속에는 언제나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중국 본토에서는 인도네시아인인 저를 특별히 환영하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이방인 취급을 해서 크게 서운하지도 않았고요. 다만 제가 가장 사랑하는 부모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에 대해 알려고 노력했죠.”

무엇보다는 중국어를 배우면서 얻게 된 점은 “어머니와 중국어로 이야기 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말한다. “중국어를 배워 중국을 보다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에서 그에게 중국 여행을 권했던 어머니와 중국어로 대화할 수 있게 된 것이 기뻤고, 어머니와 언어를 넘어서서 한층 더 깊은 소통을 나눌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오로지 기쁜 경험만을 준 것 같진 않다.
“안타깝게도 중국에서 배운 가장 큰 삶의 교훈은 ‘사람을 믿지 말라’는 것이었어요. 중국인한테 사기를 당했거든요. 그것만 빼면 즐거웠어요.”

이제는 집으로, 더 성숙한 모습으로

자유로움. 그가 가장 좋아하고 자주 하는 말이다. 마음대로 밖에 돌아다닐 수도 없었던 어린 시절 경험 때문인 듯 하다. 자카르타에서 화교학교만 다닌 까닭에 인도네시아 친구들을 한번도 사귀어 본적도 없다고 한다. 물론 지금 친하게 지내는 인도네시아인 친구들은 있다. 하지만 다 캐나다에서 만나서 친해진 경우다.

인도네시아에서 중국인들은 택시를 탔다가 돈을 다 털리거나, 길거리에서 폭행을 당하는 사건들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래서 항상 화교타운 내에 있는 집과 학교만 오가며 살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여성은 최대한 가리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이슬람 국가다 보니 좋아하는 치마나 민소매 셔츠도 마음대로 못 입었단다. 뒤에서 수근거리는 게 싫어서 옷차림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니 그 갑갑함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언제나 자유를 꿈꾸며 성장한 리디아의 꿈은 바로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삶의 힘을 줄 수 있는 책을 쓰는 것이다.

“여러 나라를 여행 다니면서 얻은 경험들을 토대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책을 쓰고 싶어요. 나중에 삶의 방향을 잃고 힘들어 하는 10대들을 위한 책을 출판하는 것이 저의 꿈이에요. 아무리 힘들어도 꿈을 잃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아직은 많이 부족하니까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성숙해져야죠.”

그는 오는 2월이면 인도네시아의 집으로 돌아간다. 이제는 오랜 여행을 끝내고 인도네시아에서 자리를 잡을 계획이라고 한다. 자유로움을 찾아 떠나온 그 곳에서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뜻밖의 대답이다. 화교인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도네시아 어린이를 돕는 NGO 에서 일하고 싶단다. 그리고 자신을 잘 이해해주는 친구를 만나 자신의 꿈을 전세계로 펼치고 싶다.

이제는 사랑하는 부모님 곁에서 쉬고 싶다지만, 그의 삶의 여행은 이제 겨우 시작인 것 같다. 리디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무한 긍정의 에너지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10년 뒤 그를 만난다면 여전히 따뜻한 미소로, 더 성숙한 모습으로 자신의 꿈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 리디아를 발견할 수 잇을 것 같다.

 
기사입력: 2007/01/25 [18:28]  최종편집: ⓒ www.ildar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