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 TransKorean

일본에서 유학하는 한국인 여학생의 차별 모멸감

사이박사 2009. 6. 12. 08:47

“돈 많은 남자보다 내가 더 부자”
낯선 땅에서 어른이 되는 법을 배우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조아롱

“아롱은 맨날 그렇게 알바에 찌들려 사니, 돈 많은 남자가 이상형이겠네?”
아르바이트 하는 곳의 동료가 며칠 전 나에게 물었다.
나는 입 꼬리를 한쪽만 올리고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돈 많은 남자보다 내가 더 마음이 부자일 것 같은데?”

스무 살 적의 나라면 어림도 없었을 대답이 이제는 마음으로부터 척척 우러나와 입 밖으로 나온다. 도쿄에서 생활한 지 6년째. 그렇다. 나는 변했다.

스물여섯 살. 누가 나이를 물으면 나는 꼭 일본 나이로 대답한다. 이곳의 나이로 스물을 갓 넘어 바다를 건너 와서 벌써 이십 대 후반에 진입했으니 낯선 땅에서 외국인으로, 한국인 여자라는 이름으로 어른이 되는 법을 배운 셈이다.

학생, 외국인, 노동자… 나는 누구일까?

대충 유학생이란 타이틀을 걸고 있으니, 주위에서 보면 내 팔자가 좋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가끔 한국에 들어가서 친구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내가 느끼는 속내를 사람들은 알 길이 없을 것이다. 영화 한편 보는 것쯤이야 고민도 하지 않고, 내 눈에는 호사스럽게만 보이는 데이트를 즐기고 사는 한국 대학생들의 여유를 보며, 나는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나는 수년간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이일 저일 마구 해대는 동안 ‘외국인’이며 ‘노동자’라는 위치를 스스로 깨달아 갔다. 지금은 나의 유머의 소스로 활용되고 있는 에피소드들이 그땐 왜 그리도 서럽고 힘들었던지.

외국인으로서 학교에서 겪은 언어의 장벽은 말할 필요도 없고, 그저 열심히 일하던 아르바이트 현장에서도 외국인이라고 무시당한 것 같아 화장실에서 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즐겁게 시작했던 한국어레슨 아르바이트는 도쿄의 모 유명대학 교수라는 남자로부터 원조교제 제안을 받고 분해서 잠을 못 이루고, 끝내 불쾌하고 억울한 기억으로 남았다.

지난 방학 때는 건축 현장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했다. 남들은 육체적 노동이 만만찮은 데다가 노동 환경도 좋지 않다는 이유로 기피하는 자리였지만, 나는 헬멧을 쓰고 묵묵히 하는 건축현장 일이 ‘가장 마음 편하다’고 느꼈었다. 아마 내 마음 어딘가에는 이전의 아르바이트 경험들과 연결된 사유가 있었을 것이다.

처음 유학생활을 시작했을 당시 몇 년간 나는 유학비자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도쿄의 유명 사립대학의 당당한 유학생이라는 ‘유치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살았다. 아르바이트를 하다 화장실에서 남몰래 울 때조차 주머니 속에 있는 학생증을 만지작거리며 위로를 받았다.

“학생증이 나를 대변해주진 못했다”

그 학생증이 더 이상 나를 증명해 주는 그 무엇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은 불과 2,3년 전의 일이다. 학생일 때의 나는 공부에 충실해야 하는 학생일 뿐이요, 일할 때의 나는 노동현장에서 남들과 똑같은 노동자이고, 아무리 일본어를 일본 사람과 똑같이 구사하려 노력해도 한국에서 온 외국인일 뿐임을, 천천히 그리고 너무나 확실히 깨달아 갔다.

이제껏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잊고 있었던 중요한 것들을 되새기게 됐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속한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 그리고 결국에는 나란 인간이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비록 지금도 명쾌한 대답은 얻지 못했지만 차별과 외로움, 소외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 지난 수년간의 유학 생활에서 얻은 크나큰 보물이다.

나는 싸우는 것도 싫고 억척스러운 것도 싫다. 새로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난 주에도 어김없이 억척스럽다는 말을 들었지만, 사실 나는 상처를 잘 받는 편이다. 며칠 전 비자연장을 신청하러 입국관리국에 갔을 때, 필요서류 목록에 나와있지 않았던 통장 복사본을 요구 받고 일주일간 고민했다.

통장 각 페이지를 전부 다 복사해 오라니, 나의 작은 자존심이 상처를 받았다. 나름대로 항의를 할 것인가, 아니면 순순히 해오라는 대로 통장 복사를 해다가 바칠 것인가. 며칠 뒤 입국관리국을 다시 찾은 내 손엔 통장복사본이 충실히 들려있었고 항의 한 마디 제대로 못했다.

접수 창구에 앉은 뺀질뺀질한 남자의 짧고도 차가운 설명에 또 상처를 입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외국인에게 있어 입국관리국처럼 무서운 곳이 없으니, 차별이니 인권침해니 하는 마음 속의 외침 따위엔 귀를 기울일 수 없었다. 나는 내 안에서 소소한 싸움을 계속하고 있고, 한편으론 열심히 타협하고 있다.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먼 것 같다.

그렇게 꿈꿔 온 진정한 독립을 위해

유학생활이 자리를 잡고 언어소통의 스트레스에서 해방된 지금, 그간 있었던 일들을 돌이켜 보면 이제 와서 새삼 인생수업을 받고 있는 느낌이다. 그땐 그저 일하고 학비 생각이나 생활비 생각만 하며 내 앞가림에만 급급했는데, 이제 조금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인지 다른 사람의 처지에 대해서도 신경을 쓰게 됐다.

건축 현장에서 만난 불법체류 중이었던 중국인 언니가 일 년을 통틀어 쉬는 날이 일주일도 안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땐, 내가 더 분노했다. 이 언니는 갑자기 사라졌다. 아마 입국관리국으로부터 강제송환을 당했으리라.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에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일이 있었는데, 우리는 임금미지급 문제로 파업 선언도 하면서 끝내 다 받아냈다. 또,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했다고 생각되어 경찰과 길거리에서 싸워도 봤다.

덜컹대는 전철 안에서 여러 가지를 마음 속에 되새겨 보는 요즘이다. 그리고는 내 안의 나에게 묻는다. 한 인간이 귀중한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나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왜 이 모양이지?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야.

지금 혼자 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가끔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동생한테 손을 벌리기도 하니 내가 진정한 독립을 했다고는 말할 수 없겠다. 다만 독립에 대해 내가 알게 된 것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점이다.

나의 짧은 언어능력으로는 책임이나 성실 등의 진부한 말로밖에는 표현할 수 없지만, 독립이란 것은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이 아닌 자기 내면으로부터 그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 속 저편으로부터 들려오는 나의 양심의 절절한 외침에 귀를 기울이게 될 때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적당한 타협은 이제 그만하고, 스스로 그렇게 꿈꿔 온 진정한 독립을 위해 내 안의 나를 깨우며 한발 더 나아가고 싶다.





※이 기사는 2007신문발전기금 소외계층 매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기사입력: 2007/09/26 [20:04]  최종편집: ⓒ www.ildaro.com

 

 

hyun 07/09/27 [00:51] 수정 삭제  
  공감하면서, 한편으론 조금 부끄럽기도 합니다.
스물여성의 독립치고는 훨씬 치열하게 살고 계신 것 같아서요.
가족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내가 아닌 다른 어떤 누구에게라도 금전적으로나 노동력으로나 심적으로나 의존한다는 것은, 내가 자립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고, 바꿔나가야 할 일인데도, 돈 몇 만원 쯤이야, 엄마가 좋아서 해주는 건데 뭐, 하고는 그냥 지나쳐버리기 일쑤였죠.
진짜 스스로 서기를 하려니, 영화 한 편보는 것도 시간뿐 아니라 금전적으로 부담이 되더군요.
구구돌 07/09/27 [01:54] 수정 삭제  
  이상하게 졸업을 하고
이상하게 구직활동을 하고
시궁창같은 현실이 싫어서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일본을 요리조리 생각하던 차에

이 기사를 읽고 괜시리 마음이 따땃해졌습니다
글쓰신 분은 그간 고생도 많으셨겠지만..
그래도...이상하게 읽는 내내
'괜찮아 괜찮아'라는 말이 자꾸 맴돌았습니다.

생생한 경험담...감사합니다
07/09/27 [08:41] 수정 삭제  
  비자수속에 아직도 통장잔고가 필요하다니 많이 놀랍군요.
정규대학의 유학생이면 그게 필요치 않다고 들었는데..
아뭏튼 열심히 사는 모습 좋습니다.
선미 07/09/27 [19:11] 수정 삭제  
 
이 기사를 읽으며, 저는 인생은 부딪혀봐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림 직접 그리신 것 같은데, 멋지네요.)

KK 07/09/27 [22:01] 수정 삭제  
  첨엔 스물여섯의 나이에 삶에 너무 당당하고 용감한 것 같아, 부럽다고 생각했는데, 찬찬히 다시 읽어보니 눈물을 뒤에서 그렇게 울어야지만 용감해지기도 하는 것인가 보다, 싶어서 마음이 아프네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에 책임을 져야지 정말 독립을 하는 거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봅니다. 닮고 싶은 분이네요.
우리 07/09/28 [09:59] 수정 삭제  
  진솔한 경험 나누어주셔서 감사해요.
글 읽으면서, 내가 다 쑥쑥 크는 느낌이네요!
07/09/28 [15:34] 수정 삭제  
  저도 26입니다
스스로 관리가 힘들다는 이유로 엄마가 적금통장을 관리하고 계시죠
대학생 때 공부하느라 빌린 학자금은 여전한데
지금 비정규직으로 취업하여 부당한 노동에 나름 저항도 하고
돈도 벌고 있습니다
가족이든 내가 사랑하는 남자든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정말 이제는 그만둬야 할 것 같아요
어떻게든 내 힘으로 나의 경제적인 기반을 다져나가야 성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님이 사는 모습 닮고 싶네요 아직 독립하지 못한 제 모습을 보고 갑니다
화이팅입니다
yobgirl 07/09/29 [00:06] 수정 삭제  
  도쿄에 산지 이제 갓 일년을 조금 넘겼습니다.
글을 읽으며, 왠지 모를 공감과 앞으로 내가 느껴야 할 것들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고 할까요.

감사하단 말과 힘내자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pumpkin 07/10/02 [21:57] 수정 삭제  
  4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는
26살 동지입니다.

늘 제 유학생활을 이야기할때, 떠올릴때
스스로는 나름 그래도 열심히 학비까진
아니라도 생활비는 열심히 벌었다며 스스로를 평하곤 했습니다.

이 기사를 읽으며 아직도, 지금도
상황에, 환경에 안주하며 나 스스로를 항상
안심 시키며 게을렀던 시간들이 아깝고
부끄러웠네요.

지금 이시간에도 치열하게 하루를 살고있는
젊음들이여 모두 힘내십시오 ^.,^ v


미소 08/02/28 [02:17] 수정 삭제  
  라고 누가얘기했어요
그말을공감하며 누구나 하는 고민들 하지만경험한 사람만이 이해할수 공감할수 있는 이야기.
지금 저도 한국이 아닌곳에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며 사는 지금.
처음 혼자의 힘으로.
집값도 내고. 이사도 하고. 등등
독립이라는거하고싶어서 여기에 왔고...여기있지만.
항상 헤매고 있는중.
주절주절.
뭔가 이글을 읽고 좋은느낌...비슷한 생각 들어서
써봤어요 ^^;
잘 읽었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