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키움,가배[가르치고 배우고])

조순의 망언을 꼬집는다

사이박사 2007. 3. 17. 14:40
조순, “한글전용 교육에서 벗어나야”
(꼬집는 말은 아래에 있습니다)
연합
서울시장과 경제부총리 등을 지낸 조 순(79) 서울대 명예교수는 16일 "우리나라가 제대로 가려면 한글전용 교육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날 오후 경남 마산시 사보이호텔에서 열린 사단법인 합포문화동인회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특별강연을 가진 자리에서 "현재의 한글전용 교육만을 고집하면 더이상의 국가발전은 있을 수 없으며 문화의 질 저하에서도 벗어나지 못한다"며 한글전용 교육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조 교수는 "교육의 근본은 학생으로 하여금 잘 읽고 잘 쓰고 잘 생각하고 잘 말하도록 해 올바로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교육은 그렇지 못하다"며 "이는 한글전용 교육과도 결코 무관치 않고 우리의 정치.경제.사회분야에 걸쳐서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글전용만 고집하면서 한문 문맹을 계속 방치해선 안된다"며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이 나라가 편협된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버려야 격변하는 글로벌 시대를 이겨 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우리 문화 역시 무질서하고 반지성적이며 감정적이고 불합리한 것을 많이 내포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며 "제대로 된 문화와 교육을 위해서는 한글전용 교육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병길 기자 choi21@yna.co.kr (마산=연합뉴스)

 

 

<저는 위 기사의 내용에 근거해서만 말을 하겠습니다.>

 

1) "우리나라가 제대로 가려면 한글전용 교육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현재의 한글전용 교육만을 고집하면 더이상의 국가발전은 있을 수 없으며 문화의 질 저하에서도 벗어나지 못한다"(조순)

 

> 저는 먼저 "나라를 제대로 이끈다"는 것과 "한글전용" 사이에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에 동감을 표합니다.

 

> 제 생각에 한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야 할 몸된 책임은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있다고 봅니다. 지도자들은 가야 할 길을 가리키는 사람들로서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미래에 대한 올바른 예견을 제시하여 나라가 제대로 성장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은 전지구적인 '혁신 요구'에 직면해 있습니다. 혁신이란 "새롭게 하기"입니다. 조직, 경영, 경제모델, 의식 등 모든 분야를 보다 경쟁력 있게 만들어 공동체가 정체되거나 퇴보되지 않으면서 지속적 성장을 이루어 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 현실 진단과 미래 예견 그리고 국민 설득의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지도자는 무엇보다 다양한 방면에 걸친 수준 높은 교육과 경험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협업의 능력과 결단력 또한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이 가운데 '협업'(collaboration), 즉 '일 함께하기'의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해 주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의사소통 환경이 요구됩니다. 서로 쓰는 말이 다르다거나, 정보 해독 능력이 크게 모자라거나, 남들의 생각과 판단을 무시한 채 혼자만 옳은 양 일을 처리하는 것은 일 자체를 크게 그르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그렇다면 지도자의 역량과 언어의 관계는 어떠할까요?

 

> 고대 로마 제국의 지도자들은 고대 그리스 문화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당시의 선진 문화였던 그리스 철학과 과학을 자신들의 언어인 라틴어로 번역하지 않은 채 그대로 수용했습니다. 즉 우리의 선조들이 한문을 문화어로 숭상하여 한자 그대로를 배우고 익혔던 것처럼 고대 그리스어를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그 결과 고대 로마가 멸망한 뒤 고대 그리스의 정신적 문화 유산은, 번역서의 부재로 말미암아 서양의 지성사에서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반면 이슬람인들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을 비롯한 주옥같은 고전들을 이슬람어로 모두 번역하고, 그에 기초해 창조적 연구로까지 발전시킴으로써 로마 멸망 4세기부터 그 세력이 자라나 11세기까지 유럽을 정신적으로 뿐 아니라 정치 경제적으로 압도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자신들의 모국어가 비록 다른 나라에 비해 그 수준이 떨어진다 손치더라도 끊임없는 번역과 학문활동을 통하여 모국어를 풍요롭게 하고 정교하게 만들기만 한다면, 결국 문화와 문명의 지반이 대중적으로 넓어지고 깊어짐으로써 공동체 전체가 지속적으로 진보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 무엇보다 언어는 공동체의 구성원들 사이의 손쉽고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한 방향으로 발전해 가야 합니다. 이에 대한 예로서 "선언서" 한 편을 인용해 보겠습니다.(제 블로그에서 원문을 찾아 읽으실 수 있습니다)

>

吾等은 玆에 我 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此로써 世界萬邦에 告하야 人類平等의 大義를 克明하며, 此로써 子孫萬代에 誥하야 民族自存의 正權을 永有케 하노라.

半萬年 歷史의 權威를 仗하야 此를 宣言함이며, 二千萬 民衆의 誠忠을 合하야 此를 佈明함이며, 民族의 恒久如一한 自由發展을 爲하야 此를 主張함이며, 人類的 良心의 發露에 基因한 世界改造의 大機運에 順應幷進하기 爲하야 此를 提起함이니, 是ㅣ 天의 明命이며, 時代의 大勢ㅣ며, 全人類 共存同生權의 正當한 發動이라, 天下何物이던지 此를 沮止抑制치 못할지니라.

舊時代의 遺物인 侵略主義, 强權主義의 犧牲을 作하야 有史以來 累千年에 처음으로 異民族 箝制의 痛苦를 嘗한 지 今에 十年을 過한지라. 我 生存權의 剝喪됨이 무릇 幾何ㅣ며, 心靈上 發展의 障碍됨이 무릇 幾何ㅣ며, 民族的 尊榮의 毁損됨이 무릇 幾何ㅣ 며, 新銳와 獨創으로써 世界文化의 大潮流에 寄與補裨할 機緣을 遺失함이 무릇 幾何ㅣ뇨.

噫라, 舊來의 抑鬱을 宣暢하려 하면, 時下의 苦痛을 擺脫하려 하면, 將來의 脅威를 芟除하려 하면, 民族的 良心과 國家的 廉義의 壓縮銷殘을 興奮伸張하려 하면, 各個 人格의 正當한 發達을 遂하려 하면, 可憐한 子弟에게 苦恥的 財産을 遺與치 안이하려 하면, 子子孫孫 의 永久完全한 慶福을 導迎하려 하면, 最大急務가 民族的 獨立을 確實케 함이니, 二千萬 各個가 人마다 方寸의 刃을 懷하고, 人類通性과 時代良心이 正義의 軍과 人道의 干戈로써 護援 하는 今日, 吾人은 進하야 取하매 何强을 挫치 못하랴. 退하야 作 하매 何志를 展치 못하랴.

>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과연 몇이나 이 선언서를 읽거나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초등학생에게 이 선언서를 가르칠 수조차 있겠습니까?

 

> 이 선언서는 "기미독립선언서"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글은 대한의 독립을 국민들에게 외쳐 독립운동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 선언서를 지었던 당시 최고의 지성인들과 지도자들은 도대체 누구에게 독립을 호소하고 있는 걸까요? 분명 대한의 국민들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이 선언서가 대한의 모든 국민들이 읽을 수 있도록 읽기조차 힘든 한자를 한글로 바꾸고, 그 뜻을 잘 모를 한자를 쉬운 말로 풀며, 지식인들에게만 통용되는 용어들을 당시의 국민들이 편리하게 주고받던 일상어로 바꾸어 주기만 했더라도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 당시의 지도자들이 나라를 제대로 이끌고자 했다면 당시 국민들의 의사소통 방식과 그 능력을 있는 그대로 인정했어야 합니다. 국민들의 언어생활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야 했던 것이지요.

 

> 오늘날 국민의 정부는 "dynamic korea"를 외치고 있습니다. 이 외침은 "대한민국을 활력 있게 만들자"는 뜻이지요.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뜻은 "대한민국의 혁신"을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외침을 제대로 이해하는 국민들이 또 몇이나 될까요? "대한민국을 새롭게!"라고 바꾼다면 그 뜻을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이러한 보기를 찾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지도자들이 쓰는 말들을 보면 독립선언서의 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뜻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그것을 이해하고 실천할 국민들을 배려하지 않는 표현들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그들만의 외침"에 그치게 될 것입니다.

 

> "정치와 언어"의 관계에 대한 결론을 내리자면, 지도자의 말은 그를 따르는 모두가 쉽고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어야 마땅합니다. 이슬람의 번영 사례를 염두에 두고 말한다면, 오늘날 우리에게는 한자로 된 것이든 영어나 기타 외국어로 된 것이든 모두 한국어로 적극적으로 번역해 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미국이나 일본 그리고 독일이나 프랑스 등의 나라들의 성장의 밑바탕에는 이러한 번역의 역사가 놓여 있다는 사실, 즉 자신들의 모국어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존중 그리고 투자가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2) "교육의 근본은 학생으로 하여금 잘 읽고 잘 쓰고 잘 생각하고 잘 말하도록 해 올바로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교육은 그렇지 못하다", "이는 한글전용 교육과도 결코 무관치 않"다.(조순)

 

> 저는 교육의 근본에 대한 위의 생각과 한글전용 사이에 깊은 관계가 있다는 점을 적극 인정합니다.

 

> 교육에는 "글 가르치기"(읽기, 쓰기, 듣기, 말하기)뿐만 아니라, "생각하기" 및 "실천하기" 등이 분명 포함됩니다. 위의 주장에서처럼 만일 "우리나라의 교육"이 교육의 근본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면, 과연 교육의 근본에 포함된 어떤 요소가 어떻게 잘못 된 것일까요? 한글전용이 그 잘못에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일까요?

 

> 저는 그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즉 한글전용과 관련한 교육적-사회적 저항이 아직도 거세기 때문에 교육의 근본이 제대로 달성되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 우선 읽기, 쓰기 등의 "글 가르치기"는 한글전용을 통해 교육될 때 가장 뛰어난 교육적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초등학교 이상이 되는 때부터 한글전용의 방식으로 읽고 이해하는 데 많은 어려움들이 생겨난다는 점입니다. 이는 한문교육이나 영어교육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합니다.

> 하지만 저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한글전용이 대학교나 대학원을 넘어 고도의 학문분야나 전문분야에까지 이어질 수만 있다면, 이는 한국인들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교육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즉 한국인 학생들에게 가장 뛰어난 교육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한글 전용으로 읽고 쓰고 생각하고 말하고 실천할 수 있게 해 주는 데 있을 것입니다.

> 물론 이런 일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전문어나 학술어는 이미 한자어나 일본어 또는 영어나 각종 외국어로 만들어져 있고, 또 지금도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태가 빚어진 가장 주된 이유는 이 땅의 지식인들이 자신들이 [외국어나 한자어로] 배운 바를 한글전용의 정신에 따라 가르치지 못하고 다급한 마음에 소개에 급급해 하는 바람에 일본의 용어들을 차용해 쓰거나 아예 외국어 자체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지적 나태와 폭력"을 가해 왔기 때문입니다.

> 한글전용에 대한 반대 이유로 그것이 교육의 근본을 제대로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꼽는 것은 교육의 현실과 이상을 전체적으로 왜곡하는 처사입니다. 칼빈에 의해 주창된 국민교육 덕분에 스위스 국민들의 교육 수준이 당시 유럽 최고가 될 수 있었고, 루터의 성서 번역이 당시 독일 서민들이 쓰던 독일어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종교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그러나 저는 한글전용에 대한 주장이 한문교육이나 외국어 교육에 대한 반대로 이어져서는 결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이 본디 국민들 각자를 자유로운 인격으로 성장시키는 데 있기 때문에 누구나 자신이 배우고자 하는 바를 교육 받을 수 있는 권리(교육권)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모자라 다음에 쓰겠습니다.)

 

 

> 우리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낱말들을 살펴보십시오! 그 유래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정체 불명의 낱말들이 뒤죽박죽 어지럽게 춤추지 않습니까? 그래서 차라리 영어공용론에 동의할 마음이 일 정도가 아닌가요?

 

하지만 오늘날에는 "창의적 교육"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읽기 아니라, 한자교육으로 일관되었던 조선시대의 교육자들에게조차 동의를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 조선시대의 교육은 교육자가 스스로 본을 보이는 것을 근본으로 삼았습니다. 청렴, 겸손, 성실, 예의, 정의 등의 주요 덕목들을 몸소 실천하는 학자가 존경을 받음으로써 저절로 제자들이 생겨나고, 스승의 지행합일의 정신을 몸에 익힘으로써 사회 전체가 도덕적으로 올바른 길을 가게 되도록 이끄는 것이 곧 교육이었습니다. 달리 말해, 학생에게 읽고, 쓰고, 생각하고, 말하는 등의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교육의 근본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 곧 스승에 대한 존경으로 이어지고, 그로써 제자들이

> 제가 보기에 이러한 진단은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우선 과거의 한자교육은 주로 과거시험과 같은 입시 위주의 교육환경에서나 부분적으로 유효한 교육입니다.

 

 

- "한글전용만 고집하면서 한문 문맹을 계속 방치해선 안된다"

- "이 나라가 편협된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버려야 격변하는 글로벌 시대를 이겨 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제대로 된 문화와 교육을 위해서는 한글전용 교육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그는 또 "우리 문화 역시 무질서하고 반지성적이며 감정적이고 불합리한 것을 많이 내포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며 "제대로 된 문화와 교육을 위해서는 한글전용 교육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