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강하며 편지 읽어주는 우리 교수님
- 디지털 시대의 아놀로그 편지 이야기-
“내가 너희들을 위해 편지를 써왔단다. 한번 읽어 볼 테니 잘 들어봐라.”
2006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그리고 세 달 남짓한 한 학기 수업을 정리하며 교수님은 ‘깜짝’ 편지를 들고 오셨다. ‘종강하며 편지를 읽어주는 교수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탓일까, 선생님의 편지는 사실 조금은 ‘낯선 이벤트’였다.
그때 그날, 편지 읽어 주던 날.
“이런 순간에는 배경음악이 쫙 깔려줘야 하는데 말이야!”
선생님의 농담 한마디에 센스 있는 남학생이 얼른 일어나 컴퓨터를 이용해 배경음악을 준비한다. 첫 곡은 너무 우울했고 두 번째 곡은 너무 끈적(?)했다. 세 번째 곡 역시 뭐,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일단은 ‘오케이!’
‘잘 지내고 있니’로 시작된 편지 속에는 대학 시절 선생님의 모습이 담겨있다. 1982년, 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던 아득한 그 시절. 전두환의 지독한 독재정치에 반발하며 데모를 나가고 매일같이 연극반에서 연극을 하고, 책을 읽고, 토론을 하고, 농활을 갔던 선생님이 있다. 그리고 2006년 겨울. 우리와 함께 한 학기 동안 공부한 선생님도 있다. 적당한 인원과 좋은 수업분위기 탓에 우리 수업을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며, 누구보다도 완벽한 프로젝트를 수행해준 우리가 자랑스럽고 고맙다는 선생님이 있다. 풍요로운 인생의 여행을 기획하고, 뜨겁게 사랑하며 아름다운 미래를 설계해 나갈 것을 당부하는 따뜻한 선생님이 있다.
그리고 또, 선생님 앞에 우리가 있다. 1982년의 선생님처럼 분주하게, 그리고 정열적으로 인생의 가장 뜨거운 페이지를 써내려 갈 우리가 있다.
너, 이런 교수님 봤어? 우리 선생님은 편지도 읽어 주셔!
내 나이 스물 둘. 친구들과 실컷 수다를 떠는 자리에서, 우리 선생님 자랑을 늘어놓기에는 사실 좀 쑥스러운 나이이다. 그런 내가 친구들 앞에서 눈을 반짝거리며 이창현 교수님(국민대학교 언론정보학부)의 이야기에 열을 올리는 것은 그분이 바로 ‘편지 읽어주는 교수님’이기 때문이다. 편지를 읽어 준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길 작은 이벤트일 수 있다. 그러나 사실 편지를 읽어준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편지를 쓰는 사람과 그 편지를 받게 될 사람 사이에는 애틋한 감정이 놓여 있기 마련이다. 비록 3개월 이라는 짧은 한 학기이지만, 그 기간동안 서로에게 맡겨진 과제에 얼마만큼 충실했는지 그리고 얼마만큼 서로를 아끼고 존중했는지 자신할 수 있을 때 편지를 쓰고, 또 그 편지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뜯어볼 수 있는 것이다. 학생들과의 감정어린 소통이 없었다면, 그리고 스스로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결코 펜을 들지 못했을 것이다. 편지는 진심을 담은 자기 고백적 글쓰기이다. 그래서 편지 읽어주는 교수님은 낯선 만큼 특별하다.
끈끈한 사제간 우정, 아날로그 방식으로 사랑하기
2006년, 유난히도 ‘체벌교사’라는 단어가 뉴스의 메인으로 두드러졌던 한해이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내 동생은 ‘학교 선생님’하면 ‘답답하다’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오른단다. 사랑의 유형 중에 사제간 우정이 큰 부분을 차지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학기를 마친 후, 강의 평가를 통해서나 선생님과 감정적으로 마주한다. 나는 이번 강의를 통해, 편지 읽어주는 선생님을 만났고 새로운 소통의 방법을 찾았다. 선생님이 편지를 읽어 주던 그 때 그날, 나는 왠지 숙연해 지기도 하고 ‘종강’이라는 단어가 새삼스럽게 아쉬움으로 다가왔으며 세 달 남짓한 강의 시간도 아련해왔다. 선생님의 편지 덕분에 우리들이 함께 공부한 시간은 추억이 되었다. 선생님과 학생, 각자 주어진 역할만 형식적으로 재빠르게 수행해 나가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 되어버린 요즘의 대학생활에서, 편지 읽어 주는 교수님이 곁에 있다는 건 내가 만난 큰 행운이며 축복이다.
국민대학교 이창현 교수님의 [미디어비평2006년 겨울] 종강 기념 단체사진.
미디어 비평 강의의 결과물인 학생들의 비평문은 미디어 다음의 기사로 게재하여 7만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큰 호흥을 얻었다. 미디어 비평 수강 학생들은 모두 미디어 다음의 대학생 기자단이다.
2006년 한 해도 겨우 보름가량 남았다. 이제 곧 다가올 새해에 나는 대학교 4학년이 된다. 그때, 2006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되돌릴 때 나는 우리에게 “뜨겁게 사랑하라”고 일러준 선생님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고, 나아가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하라는 소중한 이야기. 자, 이제 선생님께 답장을 쓸 시간이다. 얼마나 오랜만에 ‘자필 편지’를 써보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선생님께 앞으로 내가 접하게 될 수많은 사람과 경험, 나의 인생을 뜨겁게 더 뜨겁게 사랑하겠노라고 말 할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사라져가고 있는 아날로그 편지를 통한 소통, 이 것이 우리 사회가 재생해야 할 끈끈한 사제지간을 위해 가장 필요한 연결고리는 아닐지 생각해 보며 이쯤해서 글을 마친다.
잘 지내고 있니. 벌써 종강이 되는 것 같구나. 한학기가 이렇게 쉽게 지나가는 구나.
너희들도 첫 강의 들었을 때의 설레임은 없어지고, 우리들 사이도 많이 친숙해진 것 같구나. 처음 볼 때는 다들 신선해보이지만, 조금 지나면 다들 익숙해지고, 서로 간에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구나?
대학생으로서의 너의 들의 삶을 나는 25년 전쯤의 내 모습을 돌이켜보면서 이해한단다. 나의 젊은 나날은 하루하루가 추억의 한 페이지를 만들만큼 많은 경험을 해왔던 것 같구나. 그렇게 많이 대학생활에서 경험한 것이 나에게 정말 많은 자극이 되었던 것 같다.
그때는 1982년도였으니까 전두환 대통령이 구테타로 정권을 잡고 언론을 장악하여 매일같이 전두환으로 시작되는 뉴스를 들었던 시기였단다. 군대의 힘이 강하고 그와 어떻게든 줄댄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였지.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10.26으로 대통령이 죽었을때, 대학교 앞에 기관단총을 단 장갑차를 기억하고 있으며, 경희대학교 앞에서 사이드카를 몰고가던 헌병대가 갑자기 서서 대학생을 조인트까던 그런 기억을 갖고 있다. 종로5가였던가 지하철에서는 보안부대원 같은 애가 군인을 패는데 대단했던 기억도 있고, 어떤 선배가 도서관 옥상에서 칼을 들고 전단을 뿌리던 기억도 있단다. 그리고 매일같이 연극반에가서 연극하고 책을 읽고 토론하고 농활가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해 겨울이었지 이문열의 동명소설과 같이 동해안으로 향했단다. 강원도 도계에가서 막장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내 친구를 만났지. 11월3일 학생의 날 데모를 나갔다가 내 옆에 있었는데, 교련복을 입었다는 죄로 잡혀서 무기정학을 맞고 탄광에 와있던 친구란다. 나는 그와 함께 폐광 앞에서 돼지고기 구워가며 소주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오다가는 주인 없는 감나무의 감을 50여가 따왔던 기억도 있다. 그날 밤 나는 영주로 향하는 열차를 탔는데, 열차간의 화장실 창에서 내 친구가 내가 올라탄 열차 간을 한동안 망연히 바라보건 것을 보았단다. 그 녀석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눈물을 흘렸다. 남자의 첫 눈물....떠나가는 나를 보고 얼마나 많은 회한에 가득차있었을까 생각해본다.
이러한 나의 삶 때문인지 나는 대학선생이 된 후, 지금도 세상을 어떻게든 바꾸고 싶단다. 그렇지만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고 쉽게 바뀌지도 않는 것이다. 누구든 이미 가지고 있는 이익을 나누어 주려고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나는 내가 몸담고 있는 부문에서라도 세상을 바꾸고 싶단다. 내가 환경운동연합의 일을 도와주고 있는 것도, 학교에서 녹색캠퍼스 운동을 사서하고 있는 이유도, 그리고 이번겨울에 아시아의 희망이라는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서 피스&그린보트에 오르는 것도 그런 때문이란다.
나는 너희들이 나와 같을 수는 없지만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살아가기를 바란다. 세상에 속해있지만,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희망을 가졌으면 한단다. 이제 겨울방학이다. 짧지 않은 방학이다. 이러한 방학에서 여러분들이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탐구해갔으면 한단다. 그리고 멋진 너희의 인생을 개척해나갔으면 한단다.
나는 이번 영상컴을 통해서 너희들이 영상세계의 범람하는 이미지를 이해하는 기본적인 안목이 생겼으면 한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감독이나 피디가 되던, 아니면 일반회사의 직원이 되던 영상적인 안목과 분석력을 조금이라도 가졌으면 하고 바랐다.
그래서 어려운 교재이지만 여러분들에게 읽었으면 하고 기대했고, 힘든 프로젝트였지만, 애국가를 분석하고 새로운 대안적인 내용을 만들어보도록 했다.
내가 요구했던 것이 쉽지 만은 안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버거운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번 시험과 프로젝트과제를 내면서 정리해보면 분명 새로운 정보를 얻은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노트북의 정리는 너희 스스로 내가 배운 것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나는 미디어비평을 통해서 너희들에게 사회비평으로서 미디어비평의 의미를 가르치려고 했고, 너희들에게 글쓰기의 최소한의 전범을 제시해보려고 했단다. 너희들이 자기스스로의 글을 만들어보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를 알고 있겠지. 이것이 첫 글이라고 한다면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이를 통해서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글쓰기를 제대로 훈련해보도록 해라. 아마도 좋은 비평문을 찾아보고 함께 읽어본 것은 좋은 훈련이 될 것이다. 누구나 본 것만큼 상상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제까지의 글쓰기의 모습이 바로 너희의 스탠다드가 될 것이다. KBS의 미디어 포커스는 너희에게 미디어의 현실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을 것이다. 미디어 현실이 우리의 의식을 지배한다고 하지 않니. 그만큼 우리는 미디어 현실에 대해서 좀더 비판적인 인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노트북의 정리는 너희 스스로 내가 배운 것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인터넷의 시대라고 한다. 그래서 너희의 글을 다음에 올리라고 했단다. 그것을 통해서 인터넷의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한다.
나 역시 이 수업을 통해서 많이 배웠다.
너희들의 프리젠테이션은 누구 할 것 없이 완벽했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으로 생각이 든다. 때로는 내가 놀랄 정도로 체계적인 분석을 하기도 했단다. 그만큼 대견하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알려고 하지 말고, 이제까지 발표된 것만 잘 요약하고 너희들 머릿속에 넣으면 될 것 같구나.
나는 너희들과 많은 소통을 하려고 했다.
너희들이 때로는 소극적이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이번학기의 강의를 쉽게 잊지는 못할 것이다. 아주 적당한 강의인원과 좋은 수업분위기 때문이다.
너희들도 마무리할 때까지 더욱더 정열적으로 강의를 마무리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갔으면 한다.
내가 너희들에게 편지를 쓰는 것이 벌써 2학기 째이다. 너희도 나에게 편지를 하나씩 써주라. 지난학기의 편지도 가끔씩 나는 보고 있단다.
봉투에 넣어서 나에게 전해주거라. 학교로 우표를 붙여서 넣어도 좋고, 연구실에 넣어도 좋다. 아니면 이메일로 보내도 좋고....
나는 이번 겨울방학에 아마도 피스&그린보트를 타고 중국,베트남,필리핀등을 다녀올 것이고, 정토회의 인도도 다녀올지 모른다. 여행이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 너희도 인생의 여행을 잘 기획 하거라.
뜨겁게 사랑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설계해라. 사랑한다. 그럼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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