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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날1) 설날의 어원설이란 새해의 첫머리란 뜻으로 설날은 그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 낯설다. "라는 말의 어근인 " 설 "" 새해에 대한 낯설음 " 이라는 의미와 "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 "이란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즉 설날은 묵은 해에서 분리되어 가는 전이 과정으로, 아직 완전히 새해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그러한 단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 선날 " 즉 개시라는 뜻" 선다 "라는 말에서 "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이 " 선날 "이 시간이 흐르면서 연음화 되어 설날로 와전되었다는 것이다. ☞" 삼가다 " 또는 "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옛말인 " 섧다 "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하는데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 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일이란 " 삼가고 조심하는 날 "이란 뜻인데,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생긴 말이다. 한편 설날은 원일(元日), 원단(元旦), 정조(正朝), 세수(歲首), 세초(歲初), 세시(歲時), 연두(年頭), 연시(年始)등의 한자어로도 불린다. 2) 설날의 유래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로 여겨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설날을 명절로 삼기 위해서는 우선 역법이 제정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설날의 유래는 역법의 제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가 나름대로의 역법을 가지고 있었음은 중국인들도 진작 인정하고 있었다. "삼국지"에 이미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신라 문무왕 대에는 중국에서 역술을 익혀와 조력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미루어 보더라도 우리민족은 단순한 중국 역법의 모방이 아니라 자생적인 민속력이나 자연력을 가졌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다. 또 신라의 독자적인 명절이라 할 수 있는 가위나 수릿날의 풍속이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우리민족이 고유한 역법을 가졌을 가능성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 전래의 태양태음력이나 간지법 이외에 우리 고유의 역법 제정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설날은 적어도 6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태양태음력을 받아들인 이후 태양력을 기준으로 제정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설과 정월 대보름, 삼짇날, 팔공회, 한식, 단오, 추석, 중구, 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 단오, 추석을 4대 명절이라 하였으니, 이미 이 시대에는 설이 오늘날과 같이 우리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확고히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3) 설날의 풍속 설날의 세시풍속으로는 차례, 세배, 설빔, 덕담, 문안비, 설 그림, 복조리 걸기, 야광 귀쫓기, 청참, 윷놀이, 널뛰기, 머리카락 태우기 등 그 종류가 상당히 다양하다. ☞설날 차례정월 초하룻날 아침 일찍이 각 가정에서는 대청마루나 큰 방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제상 뒤에는 병풍을 둘러치고 제상에는 설음식을 갖추어 놓는다. 조상의 신주, 곧 지방은 병풍에 붙이거나 위패일 경우에는 제상 위에 세워 놓고 차례를 지낸다. ☞세배설날 차례를 마친 뒤 조부모, 부모에게 절하고 새해 인사를 올리며, 가족끼리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절하는데, 이를 세배(歲拜)라 한다. 세배가 끝나면 차례를 지낸 설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마친 뒤에 일가 친척과 이웃 어른들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린다. 세배하러 온 사람이 어른일 때에는 술과 음식을 내어놓는 것이 관례이나, 아이들에게는 세뱃돈과 떡, 과일 등을 준다. 세배를 할 때는 오른손이 왼손 위에 놓아서 큰절을 한다. ☞설빔정월 초하룻날 아침에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새 옷을 입는데, 이것을 설빔(歲粧)이라고 한다.이 설빔은 대보름까지 입는 것이 보통이다. ☞덕담(德談)설날에 일가 친척들과 친구 등을 만났을 때 " 과세 안녕 하셨습니까?" "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 " 새해에는 아들 낳기를 빕니다." 등과 같이 그 사람의 신분 또는 장유(長幼)의 차이에 따라 소원하는 일로 서로 축하하는 것을 말한다. 2. 단오1) 조상들의 단오이날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새 옷으로 갈아 입고 즐겁게 노는 날로 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이날은 농민들이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기풍제이기도 하여 농사를 생활의 근본으로 여긴 우리 선조들에게는 큰 의미를 지니 날이다. 2) 단오의 기원단오는 중국 초나라 회왕 때 굴원이라는 신하가 간신들의 모함에 자신의 지조를 보이기 위하여 5월 5일 멱라수에 투신자살하였다. 그 후 해마다 굴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제사를 지내게 되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에 전해져 단오가 되었다고 전한다. 3) 단오의 풍습☞단오선더위가 시작되는 단오날이 되면 왕이 직접 각 재상이나 시종들에게 헌납 받은 부채를 하사한 것에서 유래되어 서로 부채를 선물하는 것을 말한다. ☞제호탕궁중의 내의원에서는 제호탕을 만들어 왕께 바치면 신하에게 하사하여 여름 더위를 막도록 해주었다. ☞익모초 말리기 단오날 오시(午時)에 익모초, 쑥을 뜯어 말려 두었다가 일년 내내 약용으로 쓴다. ☞오시목욕단오 전날 저녁 물을 길러 두었다가 단오날 오시에 무병장수를 바라며 목욕을 하였음. ☞단오제와 단오 굿지역민들의 일체감을 고취시키는 의례로서 단오제와 단오굿 마을마다 열어 마을의 풍년과 화복을 빌었다. 특히 강릉지방의 강릉단오굿, 경남 영산의 문호장굿, 경북 자인의 한장군놀이 등이 있는데, 이러한 의례들은 각종 놀이 및 행사들과 접목되어 현재 지역민의 축제로 발전하였다. ☞단오장전통사회에서 농가의 부녀자들은 "단오장(端午粧)"이라 하여 창포뿌리를 잘라 비녀로 만들어 머리에 꽂아 두통과 재액을 막고, 창포를 삶은 물에 머리를 감아 윤기를 더하게 하였다. ☞대추나무 시집보내기 농가에서는 대추풍년을 기원하기 위하여 대추나무 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놓는 풍습이 있는데, 이를 "대추나무 시집보내기"라 한다. 4) 단오의 민속놀이단오의 대표적인 놀이로는 그네뛰기와 씨름이다. 그네뛰기는 여성들의 대표적인 놀이 로 치솟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와 쌍벽을 이루는 대표적인 남성들의 놀이로 씨름대회가 있다. 씨름대회에서 이기는 사람에게는 관례로 황소를 상품으로 주는데, 경기방식은 요즘과 같이 토너먼트식이 아니라 도전자들을 모두 이겨 상대자가 없게 되면 우승을 하게 된다. 3. 추석1) 추석의 어원8월 보름달이 가장 달빛이 좋으므로 「예기」에 "春朝日 秋夕月"이라 한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2) 한가위의 어원신라 유리왕이 왕녀 두 사람을 시켜 6부의 여자들을 반으로 나누어 7월 보름달부터 6부의 뜰에 모여 베를 짜는데, 을야(乙夜)에 이르러서야 헤어지곤 했다. 이렇게 하길 8월 보름날까지 하여 그 성적을 평가하여 진 편에서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이긴 편을 대접했다. 이 때 노래하고 춤추며 온갖 놀이를 다 했는데 이를 "가배(嘉俳)"라 했다. 이 "가배"가 오늘날 「한가위」라는 뜻의 「가위」에 해당하는 그 당시 한자의 음차표기로, 가을을 초추, 중추, 종추 3달로 나누었을 때 음력 8월이 중간에 들어가는 가을의 가운데 즉 "중추"의 우리말 표기이다. 즉, 「한가위」는 한"이라는 "크다"라는 뜻과 "가위"라는 가운데라는 뜻이 모여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다. 3) 조상들의 추석신라에서는 8월이면 조정에서 달에게 절하는 의식이 있었고 8월 15일에는 왕이 풍악을 울리게 하고 관원들로 하여금 활쏘기 대회를 열어 우승한 사람에게 삼베를 상으로 주기도 하였다. 추석을 명절로 삼은 것은 이미 삼국시대 초기였으니, 오랜 전통이 있는 추석 명절에는 여러가지 행사와 놀이가 세시풍속으로 전승되고 있다. 추석이 되면 조석으로 기후가 쌀쌀해져서 사람들은 여름 옷에서 가을 옷으로 갈아입는다. 추석에 입는 새 옷을 추석빔이라고 하는데, 옛날 머슴을 두고 농사짓는 집에서는 머슴들까지도 추석 때에는 새로 옷을 한벌씩 해주었다고 한다. 추석날 처음 하는 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 차례를 지내는 일이다. 햅쌀로 밥을 짓고, 햅쌀로 술을 빚으며, 햇곡식으로 송편을 만들어 차례를 지낸다. 가을 수확을 하면 햇곡식을 조상에게 먼저 천신(薦新)한 다음에 사람이 먹는데, 추석 차례가 천신을 겸하게 되는 수도 있다. 차례가 끝나면 차례에 올렸던 음식으로 온 가족이 음복(飮福)을 한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조상의 산소에 가서 성묘를 하는데, 추석 전에 미리 산소에 가서 벌초를 한다. 여름 동안 무성하게 자란 풀이 시들어서 산불이 나면 무덤이 타게 되므로, 미리 풀을 베어주는 것이다. 추석이 되어도 벌초를 하지 않은 무덤은 자손이 없어 임자 없는 무덤이거나, 자손은 있어도 불효하여 조상의 무덤을 돌보지 않는 경우여서 남의 웃음거리가 된다. 추석 명절에 차례와 성묘를 못 하는 것을 수치로 알고, 자손된 도리가 아니라고 여긴다. 4) 추석 민속 놀이☞강강술래서남해안지역에 전승되는 추석놀이의 대표적인 부녀자들의 놀이이다. 이 강강술래는 수십 명의 부녀자들이 밝은 달밤에 손에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노래하면서 춤을 추는데, 놀이의 구성은 늦은강강술래, 중강강강술래, 잦은강강술래로 되어 있으며, "강강술래"라는 후렴구로 받는 소리를 하면서 원무를 하고 메기고 받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부수적인 놀이로 지역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기는 하나 남생아 놀아라, 청어 엮자, 청어 풀자, 지와 밟기, 덕속몰기, 쥔쥐새끼놀이, 문열어라, 가마등, 도굿대당기기 등이 있다. 이 같은 놀이를 번갈아 하면서 밤새 논다. ☞줄다리기한반도의 중남부 지역에 가장 널리 분포되었으며, 남녀노소가 함께 참여하는 대동놀이이다. 두 패로 나누어 굵은 줄을 서로 당겨 자기 편으로 끌어온 쪽이 이기는 경기 또는 놀이인 줄다리기는 예부터 대개는 정월 대보름날에 하며 지방에 따라서는 5월 5일 단오절이나 7월 보름날 백중절에 하였다. 한 고을이나 촌락이 서로 나누어 집집에서 모은 짚으로 새끼를 꼬아 수십 가닥으로 합사한 큰 줄을 한 가닥으로 하여 다시 여러 가닥으로 꼬아 굵은 줄을 만들고, 줄에는 손잡이 줄을 무수히 매단다. 줄머리에는 양편 모두 도래라고 하는 고리를 만들어 연결하며 중앙에서 동서부의 고리를 교차하여 그 속에 큰 통나무를 꽂아 동서부의 줄을 연결한다. 마을 사람들은 노소를 막론하고 참가하여 줄을 당기어 승패를 겨룬다. ☞씨름개인놀이, 상대놀이, 소집단 놀이, 대동놀이로도 존재하였던 씨름은 단오와 백중 그리고 추석, 정월대보름에 행해졌다. 힘께나 쓰는 사람들은 씨름판을 벌이는데, 어린이들은 아기 씨름을 하고 장정들은 어른 씨름을 한다. 잔디밭이나 백사장에서 구경꾼에 둘러싸여 힘과 슬기를 겨루게 된다. 씨름에서 마지막 승리한 사람에게는 장사라 부르고 상으로 광목, 쌀 한가마 또는 송아지를 준다. ☞활쏘기서정에 모여 일정한 거리에 과녁을 만들어 놓고 활을 쏘아 과녁을 맞추는 경기이다. 활쏘기는 상무정신을 기르게 하고 심신을 단련하게 하는 운동이기도 하다. 여러 궁사들이 줄을 서서 차례로 쏘아 과녁에 맞으면 지화자 노래를 부르면서 격려하고 축하를 해준다. ☞가마싸움일명 자메쌈 또는 가마놀이라고도 하며 학동들의 놀이이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각 서당의 학동 중 대표를 뽑아 총사로 삼고 각기 가마와 기를 만들며 가마싸움을 하는데 마을 주민 모두가 나와 응원을 하고 박수를 치며 격려를 한다. 총사의 지휘에 따라 접전을 하며 전진하고 후진하고 좌우로 빙빙 돌다가 틈만 있으면 뚫고 들어가 가마와 가마를 부딪게 하거나 발로 가마를 차고 부순다. 또 적군의 기를 많이 빼앗으려고 한다. 승리한 측은 빼앗은 기를 높이 들고 기세도 당당하게 마을을 다시 누비고 다닌다. ☞소먹이놀이설에도 행해지는 놀이로 거북놀이와 비슷하나 이 놀이에는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 들어 있다. 중부지방에 널리 퍼져 있으며 황해도 일부 지역에서도 볼 수 있다. 이 놀이는 두 청년이 궁둥이를 서로 맞대어 엎드리면, 그 위에 멍석을 덮어 씌워 앞쪽이 되는 한 사람은 두 개의 막대기를 각각 손에 드는데 이는 소의 뿔을 나타내는 것이고, 뒤쪽 사람이 든 한 개의 막대기는 소의 꼬리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멍석을 덮어 쓰고 뿔과 꼬리를 내놓은 채 소걸음으로 걸어가며 다른 한 사람이 이 소를 끌고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집 주인이 내어 놓는 술과 여러 가지 음식을 먹는다. ☞그 외황해도 황주지방에는 "우희"라하여 소놀이, 경기도와 충청도에서는 거북놀이가 있었고 닭잡는 놀이(捕鷄之戱), 콩서리 등이 행해졌다. 또 중로보기(반보기)는 추석에 많이 행하는 것으로 원래는 시집간 딸이 친정집에 자주 못가니, 친정식구를 보기 위해 명절날 중간쯤에서 만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회포를 풀기도 하였다. 4. 동지冬至 : 일년 중에서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로 대설(大雪)과 소한(小寒) 사이의 절기로 음력 11월 초순이나 중순경, 양력 12월 22~23일경으로 태양의 황경이 270도에 왔을 때이다. 1) 생활정보동지는 밤의 길이가 가장 긴 날이어서 음(陰)의 기운이 충천한 날이지만 이 날 이후로 낮이 다시 길어져 양(陽)의 기운이 싹트는 날이기도 하다. 주(周)나라에서는 11월을 정월로, 동지를 설로 삼았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풍속이 전해져, 이날을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로 생각하였다. 에 의하면 동짓날을 "아세(亞歲 : 작은 설)"이라 하여 설 다음가는 경사스러운 날로 삼았다. 2) 세시풍습동지는 겨울의 시작이자 음력으로는 한해의 시작으로도 여겨졌다. 동짓날을 한해의 시작으로 보고 새 달력을 만들어 궁중에 바치었는데 이것이 바로 책력으로 관상감에서 행해졌다. 또 이날 종묘에 청어를 진상하는 청어천신와 제주도 감귤을 종묘에 진상하고 이를 기념하는 과거시험이 열렸는데 이를 감제라 한다 동지에는 길흉화복을 기원하고 미래를 알아보는 점도 성행하였는데 동지 전후 저수지에 얼음이 언 것을 보고 풍흉년을 점치는 용의 밭갈기와 팥죽 속 옹심이로 태어날 아이의 성별을 점치는 옹심이점이 그것이다. 동지의 이러한 의미들은 오늘날에도 전해져, "동지를 지나야 한살 더 먹는 다" 또는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는 말을 하고 있다. ☞동지가 초승에 들면 애동지,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믐께 들면 노동지라고 한다. 3) 동지 음식팥죽을 먹으며 매년 동지 무렵이 되면 제주목사는 특산물로서 귤을 상감에게 진상하였다. ☞ 동지 팥죽의 유래중국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신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역신을 쫓기 위하여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는데서 유래 했다. ***** 길게 썼으나 필요한 것만 쓰시면 됩니다.
추석이란 가위 왕이 만든 날 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