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모여살이)/이태원 참사(깔림눌림)

[2022-10-30 한겨레]핼러윈 악몽 153명 사망…구조 늦어진 이유 세가지

사이박사 2022. 10. 30. 20:39

핼러윈 악몽 153명 사망…구조 늦어진 이유 세가지

등록 :2022-10-30 19:26

곽진산 기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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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로 3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사고 현장이 통제되는 가운데, 인근 거리가 귀가하지 않은 핼러윈 인파로 가득 차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153명 사망.’건국 이래 최악의 압사 사고가 벌어진 ‘이태원 참사’를 두고, 대규모 참사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다는 만시지탄의 목소리가 나온다. 외국에서 발생한 대규모 압사 사고보다 훨씬 사망자 규모가 컸던 이번 사건의 요인을 분석했다.
 
10만 이상의 인파
 
코로나 대유행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 없이 3년 만에 핼러윈 행사가 열리자 사고 당일에만 약 10만명 이상의 인파가 몰렸다. 코로나 이전 핼러윈 때와 비슷한 규모라는 얘기도 있지만, 좁디좁은 골목길이 얽혀 있는 이태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인파인 것은 분명했다.평소 이태원은 즐겨 찾았던 이들에게도 이날 인파는 이례적이었다. 매년 버스킹(거리공연)을 하려고 이곳에 온다는 김아무개(37)씨는 “차도를 점거해 사람이 걸어 다닐 정도로 사람이 가득 찼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건 처음 봤다”고 했다. 30일 새벽 1시께 이태원역에서 녹사평역으로 가는 길에는 핼러윈 분장을 한 사람들이 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40대 이태원 주민 이아무개씨는 “(사고 현장은) 매번 많은 사람이 통제를 받지 않은 채 이동하는 골목”이라며 “이런 사고가 언제쯤 날 줄 알았다. 관광특구라고 해서 매번 이렇게 사람이 몰려 난장판이 된다”고 했다. 지난 15~16일에도 이태원에는 ‘지구촌 축제’가 열려 약 100만명의 사람이 오갔다. 경찰과 구청 등은 주최가 뚜렷한 공식 행사가 아닌 데다가, 집회 성격도 아니라 속수무책이었다고 해명했다. 주변 담배 가게에서 근무하는 김형준(20)씨는 “지구촌 축제에선 통제가 잘됐지만, 이번에는 경찰 인력도 적었고 통제가 안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해 핼러윈 행사에도 17만명에 이르는 인파가 몰렸는데 안이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경사진 좁은 골목
 
사고 현장인 해밀톤호텔 부근은 티(T) 자형 골목으로 돼 있다. 사고는 이 삼거리에서 이태원역으로 향하는 폭 3.2m 골목에서 사람들이 급격하게 밀집하면서 발생했다. 이 골목은 10m 앞까지는 경사가 급격하게 떨어진다. 현장 목격자들 증언을 들어보면, 삼거리에서 “밀어, 밀어”라는 얘기가 들렸고 앞에 있는 사람들이 그 힘에 눌려 넘어지면서 아수라장이 됐다.
 
현장에 있던 선택규(27)씨는 “처음엔 골목을 조금씩 걸어가다가 갑자기 막혔다. 이때 가만히 있으면 됐는데 골목 아래에선 위로 올라오려고 하고, 뒤에선 밀어내면서 문제가 커진 것 같다”며 “뒤에서 미는 힘이 강해서 우르르 넘어졌다”고 했다.
 
앞에선 “살려달라. 밀지 말아달라”고 외쳤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했다.
 
밤 11시30분께 현장을 목격한 최승환(21)씨는 “사람들에게 휩쓸려서 (해밀톤호텔) 뒷골목 중 큰 골목에서 이태원역 쪽으로 내려오는데 ‘불났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부터 옷이 다 벗겨진 사람들이 실려서 내려오는 걸 봤다. 워낙 주변이 좁고 시끄러워서 뭔 일이 났는지 아마 대부분 몰랐을 것”이라고 했다.
 
여기에 이태원 세계음식거리에 설치된 부스들이 사고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세계음식거리는 해밀톤호텔 뒤쪽 골목이다. 이태원역 메인 도로와 세계음식거리가 인파로 가득 차면서, 두 길을 연결하는 좁은 골목에서 이번 참사가 발생했다. 세계음식거리 양방향 인파가 만나 좁은 골목으로 빠져나가면서 병목현상이 생긴 것이다.
 
경찰이나 용산구청에서 사전에 보행자의 동선을 통제하는 일방통행 등의 조처를 내렸다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인명 사고 현장에서 구조대원 등이 구조 활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조 지체
 
피해가 컸던 요인 가운데 하나는 인파로 인한 구조 지체다. 사고 현장 인근의 경찰들도 손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태원파출소 간부급(경위) 경찰관은 “소방대원도 못 들어갔는데 우리가 어떻게 진입하나. 신고는 계속 접수됐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며 “(파출소) 앞 인도까지 사람이 꽉 차 있었다. 코로나 때에는 영업정지가 있던 때라 단속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10만명 이상의 인파가 몰린 이태원로 부근은 차량도 무단 정차돼 있어 사고 직후 구급차가 진입하기도 쉽지 않았다.
 
소방당국에 “사람이 깔렸다”는 내용의 신고가 최초 접수된 시각은 밤 10시15분이었다. 해밀톤호텔 건너편의 이태원119안전센터의 펌뷸런스(펌프차+구급차)가 사고 현장에 도착한 것은 6분 뒤인 10시21분이었으나, 인파를 헤치고 사고 현장에 접근해 구조 활동을 시작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고 한다. 골든타임을 놓친 셈이다.
 
상황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자, 소방당국은 밤 11시13분 소방 비상 2단계로 대응 수위를 올렸다. 첫 신고 뒤 1시간이 지난 뒤였다. 인근 소방서에서 출동한 구급차도 녹사평역에서 이태원역으로 들어가는 골목에서 진입을 시도했지만, 도로에 무단으로 정차된 차량 때문에 경찰의 통제를 받으면서 겨우 이동했다. 구급차가 제대로 지나갈 수 있는 차로가 확보되지 않아 병원으로 옮기는 시간도 지체됐다.
 
구급차가 골목까지 오지 못하면서 심정지 상태가 된 환자들이 도로 한가운데 방치돼 있었다. 현장에 있던 지아무개(30)씨는 “경찰이나 구급차가 들어오기 힘들었다. 민간인이 돕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며 “사람이 많아서 그랬겠지만, 오늘따라 (구급차가) 늦게 오는 것 같았다”고 했다.
 
염건웅 유원대 교수(경찰소방행정학)는 “압박으로 인해 하중을 받으면, 심장이나 뇌로 이동하는 혈류가 멈춘다. 골든타임이 4분이지만, 이 경우에는 당장 심폐소생술(CPR)을 해도 살리기 쉽지 않다.
 
소방차도 쉽게 들어오지 못하면서 사고가 더 커진 측면이 있다”며 “골목길도 좁아 환경적 측면에서도 이번 사고는 모든 게 나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곽진산 고병찬 이우연 안태호 기자 kj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