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칭 ‘국보’ 무애(无涯) 양주동(梁柱東·1903~1977)의 ‘문주반생기(文酒半生記)’는 수주(樹州) 변영로(卞榮魯·1897~1961)의 ‘명정(酩酊)40년’과 함께 젊어서부터 즐겨 읽던 책입니다. 술과 흥과 희대의 실수가 어우러진 두 분의 책은 해학과 풍류로 멋지게 진설(陳設)한 한바탕 글 잔칫상입니다.
그중에서도 무애의 글은 한학을 바탕으로 한 고풍스러운 말투로 인해 읽는 재미가 있기도 하고 어렵기도 합니다. 책을 처음 접한 대학시절 이후 지금까지도 출전과 의미를 모르는 성구와 한시가 있고, 무애가 친구와 주고받은 선시(禪詩)는 물론 일상적 용어도 주석과 풀이가 없어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말인데도 뜻을 모를 것도 있습니다. 무애가 빌려온 당시(唐詩)의 표현대로 물환성이(物換星移), 세상이 바뀌고 세월이 흐른 탓이겠지요.
가령 무애가 즐겨 쓴 ‘깃동’은 무슨 말일까? 명사라면 ‘저고리나 웃옷의 목둘레에 둘러대는 다른 색동’이지만 무애의 깃동은 어디까지나 부사입니다. 다음과 같은 문장에 나옵니다(‘문주반생기’ 외의 다른 글에 나온 것 포함).
①내가 깃동 마산 수재에게 一步(일보)를 사양할 리가 없다. ②깃동 구구한 개인적인 ‘구걸’이나 허허실실의 육영 장학금은 운동해 무엇하리? ③깃동 중국식 관념의 ‘효도’란 구구한 형식적, 윤리적 생각에서 이르는 것이 아니다. ④또 깃동 ‘가르치는 취미와 열성’ 쯤은 該書(해서, 그 책)에...언급이 없으니 ⑤아내의 무사 귀환만이 나의 전적인 소망이었고 깃동 서권쯤의 애완물, 한껏 귀중한 문화재야 안중에 차라리 원망스럽던, 시들풍한 ‘물건’이었다.
무애의 글에서 맨 처음 만난 ①의 깃동은 노산 이은상과의 기억력 겨루기에 나오는데, 사전에 없기에 대충 짐작하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나머지 깃동도 알아보지 않고 40년 넘게 살다가 ‘()최측의농간’이라는 출판사가 최근 새로 편집 발간한 ‘문주반생기’를 읽으면서 여러 용례를 살핀 끝에 드디어 의미를 터득하게 됐습니다. 그것은 ‘기껏해야, 고작, 그까짓’ 이런 뜻이었습니다. 40여 년 만에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을 한 셈이니 그동안 얼마나 언어에 무관심하고 불성실했는지 스스로 부끄러웠습니다.
이번에‘문주반생기’를 새로 낸 출판사‘()최측의농간’은 이름이 하도 이상망측해 물어보니 나중에 주식회사가 됐을 때 괄호 안에 (주)를 넣어 ‘주최측의농간’으로 회사명을 완성할 계획이라고 하더군요.‘출판이 장난인가, 왜 이런 이름을 지었지’싶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더 짙어졌습니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은‘책이나 글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저절로 이해된다’는 뜻으로 무애가 즐겨 쓰던 숙어입니다. 그런데 ‘최측의농간’은‘독서백편의자견’이라고 독음을 붙였습니다. 그런 게 많았습니다. 오호(嗚呼)를 명호(鳴呼)라고 하고, 인몰(湮沒)을 연몰(煙沒)이라고 하고, 저 유명한 소동파‘적벽부(赤壁賦)’의 첫머리 임술지추(壬戌之秋)를 임수지추라고 잘못 읽고, 도화(圖畵)를 도서(圖書)로 바꾸어 놓고,‘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의 친구 석광원(石廣元)을 우광원이라고 표기했습니다.
문장에서 필요한 부분만 인용하거나 자기 본위로 해석하여 쓴다는 뜻인 단장취의(斷章取義)를 ‘짧은 토막글의 뜻을 취함’이라고 풀이한 걸 보면 短章으로 잘못 안 것 같습니다. 또 반소사음수(飯疏食飮水)를 반소식음수라고 하고, 이두문(吏讀文)을 사독문(史讀文)이라고 썼을 정도이니 한문과 동양 고전에 대한 기초 교양이 거의 없는 사람들이 자전도 찾아보지 않은 채 책을 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합니다. 한문이나 한자는 그렇다 치고 우리말 토씨를 틀리거나 글자를 빠뜨린 곳도 허다했습니다.
거의 페이지마다 잘못된 게 있어 200건(전체 건수가 아니라 페이지 수 기준)도 넘는 오류, 오탈자를 메일로 알려주었더니 고맙다고 하면서도 전문학자의 충실한 주해에 의한 정본의 성립을 목표로 한 게 아니며 '최측의농간’구성원들이 이 책의 초판을 함께 독해한 과정을 기록한 걸로 이해해달라는 답장(실은 다 머리말에 쓴 내용)이 왔습니다. '문주반생기’라는 책과 양주동이라는 학자를 전혀 몰랐던 자신들과 같은 젊은 세대들과 함께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서 출간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으니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라고 갈파했던 이영표 축구 해설위원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출판은 연습이 아니며 경험 쌓기도 아닙니다. 이 출판사의 대표는 “원고의 맛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한자를 한글로 바꾸거나 병기, 초판에 없던 1,996개의 각주를 보충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그대로 받아 “자전과 사전을 비롯해 참고도서 수백 권과 인터넷 아카이브를 뒤져 가며 꼼꼼히 해독하느라 품과 시간이 들었던 것. 그런 노력은 이번 책에 달린 1,996개 각주가 증명한다.”고 보도한 신문도 있던데, 책을 조금만 찬찬히 살펴봤더라면 이런 칭찬은 감히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出陳(출진)은 물품을 내놓아 진열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걸 出陣으로 잘못 보고‘싸움터로 나아감’이라고 각주를 달았는데도 자전과 사전을 뒤져 꼼꼼히 해독한 책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문주반생기’ 초판은 1960년에 나왔습니다. 그때도 무애의 글을 다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겠지만, 지금처럼 거의 삼국시대 문서로 받아들이는 정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불과 반세기 조금 더 지난 시대의 글인데도 이렇게 불통이 될 정도로 어문생활은 변해왔고, 어문교육의 전통이 단절됐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 사회 전반의 지식량이 감퇴되거나 왜소해진다는 우려와 함께,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새삼 절감하게 됐습니다. 지식의 축적과 전승에 기여해야 할 출판의 엄정함과 진지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가벼워지는 경향도 걱정하게 됐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무애가 남긴 것과 같은 금세기의 고전을 또래들과 함께 읽고 싶다는 '발원(發願)'을 현실화할 만한 어문실력이 없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할아버지-아버지세대, 조금 내려와 형님세대의 어문전통은 이미 단절돼 없어졌습니다. 이것이 오로지 그들만의 책임은 아닐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들이 안타깝고 출판사의 실명을 밝힌 게 미안하지만, 그래도 끝내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어쨌든 틀리면 안 됩니다. 장 피에르 세르(92)라는 프랑스 수학자는“명백하게 틀린 말을 듣거나 보면 그것이 강연이든 책에 적혀 있는 것이든 나는 참을 수 없어서 실제로 몸이 아플 정도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나도 그 수학자를 닮아가는지 틀린 것 때문에 자꾸 몸이 아프려 하고 병색(病色)이 짙어져 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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