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세월호 대참사와 언어의 문제’를 주제로 열린 한겨레말글연구소 제10차 연구발표회에서 최인호 연구위원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
한겨레말글연구소 ‘세월호 대참사와 언어의 문제’ 연구발표회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온 국민의 분노와 애도가 채 식기도 전에 세월호 특별법 등을 둘러싼 논란과 냉소가 번져나갔던 것을. 이 배경엔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 전쟁이 있었고, 보수가 자신들의 세계관과 가치에 충실한 여러 프레임을 동원해 주장을 효과적으로 펼쳤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한겨레말글연구소가 18일 오후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에서 연 제10차 연구발표회에서다. 이번 행사는 ‘대학교육과 영어, 우리말 문제’와 ‘세월호 대참사와 언어의 문제’ 두 주제를 다뤘다. 박창식 한겨레말글연구소 소장은 “학문어로서 우리말의 배제가 심각하고,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의견 차이 한복판에 바로 언어의 문제가 있어 두 가지를 주제로 했다”고 밝혔다.주제1 :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 전쟁보수언론, 승무원 무능력 등 부각
민영화·신자유주의 폐해 연결 막아
대통령은 동문서답 답변 책임회피이날 나익주 전남대 영미문화연구소 연구원은 ‘프레임의 덫에 걸린 세월호’라는 제목의 발표에서 “프레임은 현상의 어떤 측면은 부각하지만 다른 측면은 은폐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말했다.그는 세월호 참사에서 한국의 보수는 ‘사고의 책임은 민영화와 규제 완화, 무한 경쟁을 핵심적 가치로 삼는 신자유주의에 있다’는 관점을 은폐하고자 했다고 분석했다. 보수 성향의 언론에선 △승무원 조타수의 무능력(기술 미비) △청해진해운의 부도덕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의 부도덕 △공무원의 복지부동 같은 문제들이 부각됐다. 나 연구원은 이를 한국의 보수가 펼친 ‘프레임 전쟁’의 틀 속에서 살피면서 “보수 언론은 사고 원인을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통해 개념화하려는 경향을 보여주었다”고 분석했다. 이런 기사들을 보는 독자들은 참사의 원인을 신자유주의 경제 운용의 폐해까지 연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5월19일 대국민 담화문도 사고의 원인을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의 직무유기와 업체의 무리한 증축과 과적 등 비정상적인 사익추구”라고 밝힘으로써 세월호 참사의 복잡성을 보지 못하도록 했다고 그는 풀이했다.또 박 대통령과 보수 언론은 ‘적폐’를 따져 처벌하는 ‘전쟁 프레임’에 ‘선악 프레임’까지 더했다고 나 연구원은 보았다. 정부에 책임을 추궁하는 야당과 진보적 시민단체들을 ‘나쁜 사람들’로 규정하고 정쟁(정치다툼)을 일삼는 몰염치한 집단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폭력시위꾼’ ‘거액 보상금’ ‘황제 단식’ ‘경제 우울증’ 등의 담론도 선악 프레임의 일부였고, 이를 통해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비난은 피하거나 최소화했다고 나 연구원은 말했다. 이런 보수의 다양한 프레임 동원에 진보 진영은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는 “이 ‘세월호’ 참사를 한국 사회의 사회적 경제적 정책 기조의 핵심인 신자유주의(민영화)에까지 연결하려는 프레임을 사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진도체육관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분석한 김진해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당시 박 대통령이 ‘구조 계획을 얘기해 달라’는 가족들의 요청에, ‘가족들에게 구조 상황을 잘 전달하라’며 동문서답 식의 답변으로 책임을 회피했다고 분석했다. 김하수 전 연세대 교수는 박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 시점이 너무 늦은데다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여론에 떠밀리듯 사과했고 사과의 대상을 특정하지 않아 ‘면소’를 받기에는 모자랐다고 지적했다.토론자로 참석한 유경근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 대변인은 “참사를 겪은 유가족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참사의 원인 규명과 책임자들의 사과, 그리고 재발 방지 약속이었다. 이것을 정말 듣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별법 협상 때도 여당의 ‘프레임’에 휘말리지 말 것을 야당에 주장했지만 여의치 않았다고 덧붙였다. 야당이 “의석이 130석뿐이라 힘이 없다”는 말만 거듭했다는 것이다. 유 대변인은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책임자들의 말을 들을 수 없었다는 것”이라며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아무 영향이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는 사람들이 이 사회를 움직이고, 그 결과 대한민국이 국민의 생명·안전과는 무관한 곳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학계, 영어 더 가치있게 여기며 우리말 배제”주제2 : 대학교육과 영어
영어몰입교육·대학평가 도입뒤
학문어로서의 우리말 위치 ‘흔들’
싱가포르 등 몰입교육 이미 실패18일 토론회의 또 다른 주제는 ‘대학교육과 영어, 우리말 교육의 문제’였다. 최근 <우리말은 병신 말입니까>(채륜)를 펴낸 구연상 숙명여대 교수는 ‘우리말로 학문하기와 대학평가의 문제’를 발표하며 영어몰입교육과 대학평가가 우리 말이 학문어가 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말로 모든 학문의 내용을 적을 수 있다는 뜻에서 우리말은 학문어이지만, 우리 학계가 학문어로 우리말보다 영어를 더 가치 있게 여기기 시작했기에 우리말은 이미 학문어가 아닐 수도 있다.”몰입 프로그램은 영어로 영어 이외의 다른 교과 내용까지 가르치는 것을 일컫고, 우리나라는 2008년부터 초·중·고에서 시범적으로 일부 교과에 한해 실시하기 시작했다. 구 교수는 “이 프로그램은 일부 국가에서 한 나라의 분열된 언어사용을 하나로 통합할 목적으로 시행되었던 것으로, 빗나간 언어 정책일 뿐”이라고 비판했다.대학평가에 영어 강의와 영어 논문 쓰기가 포함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대학 재정지원에 영향을 주는 평가지표에 영어 강의와 영어 논문쓰기가 들어가있어 우리 대학들이 덮어놓고 ‘영어논문’과 ‘영어강의’의 비중을 높여왔다는 것이다. 보수 언론사들이 시행하는 대학평가도 영어논문만 잣대에 포함시키거나 국내 학술지를 싸구려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토론자로 나선 이현송 한국외대 교수는 조금 다른 의견을 나타냈다. 그는 “영어몰입교육의 논란은 우리나라 대학생 모두에게 높은 수준의 영어 습득이 꼭 필요하냐, 대학에서 전공지식의 습득을 희생하면서까지 영어 몰입교육을 하는 것이 가치가 있는가 하는 문제에 집중된다”고 밝혔다. 지도 경험을 볼 때, 영어 강의에서 학생들의 집중이나 이해도가 더 높아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영어로 전문지식을 습득한다면 학문어로서 우리말은 쇠퇴할 것이라는 주장에 공감한다”며 “학자들이 외국 논문뿐 아니라 우리말 논문에 대해 더 활발히 논의하는 풍토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은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의 몰입 교육 시행 결과 영어 능력이 향상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해당 과목에 대한 이해도마저 떨어진다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영어몰입교육에 비판적인 의견을 보였다. 또 “‘학문어로서 손색이 없는 잘 다듬어진 한국어’와 ‘우리말로 깊이있게 연구된 학문’을 함께 추구하자면 번역의 문제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이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