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몹쓰리)의 문제/ 세월호

세월호의 교훈, 우리는 구멍이자 구명정이다

사이박사 2014. 5. 8. 11:52

세월호의 교훈, 우리는 구멍이자 구명정이다

  • "이름 없는 내 아들, 천당에서 편히 쉬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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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세월호 사고에서 지금까지 드러난 문제점을 정리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1. 선장과 선원의 실수, 책임감과 윤리의식 부재
2. 세월호 구조 작업의 결함
3. 화물 과다적재와 평형수 미비
4. 회사의 수익 위주 편법경영과 허술한 직원 관리
5. 감독기구의 관리감독 소홀과 직무유기
6. 구조 단계에서의 초동조치 미숙
7. 현장지휘 체계의 부실
8. 정부 대책 및 정치적 처신의 혼선


세월호 여객선 침몰 현장 (사진=목포해경 제공)
◈ 구멍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위기와 사고의 구조를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 중에 스위스 치즈 모델이라는 것이 있다. (영국의 사회심리학자 제임스 리즌). 스위스 치즈 중 박테리아가 내놓는 기포에 의해 구멍이 여럿 뚫린 제품이 있다. 구멍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여기저기 생겨날 구멍이 하필 한군데로 겹쳐진다면? 구멍은 엄청 커지고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이처럼 사고란 어느 한 가지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장치와 과정이 동시에 제 기능을 못할 때 크게 일어난다는 설명이다.

사고의 원인은 언제나 우리 주위에 도사리고 있다. 외부로부터 직접 가해지는 힘으로 빠른 홍수, 쓰나미, 지진, 바다의 조류나 암초 등이 존재한다.

이를 미리 피해가지 못하는 당사자의 실책도 있다. 항해를 담당한 사람들의 부적절하고 불안전한 행위가 그런 것이다. 선장이 자리를 뜨고 인계받은 이는 서툴고 사고 수습에서는 도망치는 것 등이 그렇다.

불안전한 행위를 유발하는 조건들도 사고의 원인이다. 무리한 출항, 화물의 과적, 평형수 방출, 점검 부실, 안전교육 미실시, 이에 대한 감독소홀 등이다.

마지막은 사고의 큰 배경이랄 수 있는 조직의 시스템과 시스템을 움직일 프로세스의 부실이다. 청해진이라는 기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점과 비리, 그 주변 기관들의 동조와 눈감아 주기, 사회적 감시와 법제의 미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시스템의 결함'이라고 보는 것이 스위스 치즈 모델의 해석이다. 거친 바다를 사람과 화물을 싣고 배를 운항하다보면 기상, 조류, 파도, 화물의 쏠림, 승무원 미숙과 태만… 등등 사고요인은 널려 있다. 그 결함이 동시에 일어나게 하는 건 바로 시스템적 결함이다.

세월호의 경우 여러 사고 요인 중 어느 한 두 가지만 확실히 지켜졌어도 배가 기울지 않거나, 기울어도 구조할 충분한 시간을 벌거나, 아니면 구조가 훨씬 효율적이어서 모두를 건져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동시에 실패해 커다란 희생을 치룬 것은 시스템과 프로세스의 미흡이다.

여기서 스위스 치즈 이론을 뒤집어 생각해 보자. 늘 실수와 사고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매일 사고가 터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그 일이 수행되는 과정에 있는 여럿 중 누군가는 자기 자리를 지키고, 원칙을 지키고, 감독을 게을리 하지 않기에 그런 것이다.

우리는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내가 나의 자리를 지키면 사고를 막을 수 있고, 내가 회피하고 편법을 쓰면 그 지점이 사고의 발화지점이 된다는 걸 배웠다. 우리 자신이 구멍이자 구명정이기도 한 셈이다.

안산 단원고등학교 1, 3학년 학부모들이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을 방문해 실종자 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 우리 모두는 구명정이다

1989년 3월 24일에 벌어진 엑손 발데즈 호 사고의 사례를 살펴보자. 미국의 대형 정유기업들이 알래스카 앞 바다에 유전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환경단체들은 기름을 실어 나르는 유조선 선체를 이중벽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배의 외벽을 이중으로 개조하는데 비용을 쓰고 싶은 기업은 없었다.

액손 발데즈 호는 알래스카 앵커리지 해안에서 캘리포니아로 가면서 빙하를 피하기 위해 항로를 바꿔 육지 쪽으로 접근하다 항해사가 조수에게 항해를 맡기고 침실로 내려간 사이에 산호초섬에 충돌한다. 액손 모빌의 CEO는 기름유출량이 적을 것이라는 판단에 현장 방문도 않고 책임을 암초를 피하지 못한 선장 탓으로 돌리며 알래스카 주 당국의 해양관제 소홀로 떠넘기려 했다.

그러는 사이에 4천만 리터의 기름이 바다로 흘러나왔다. 유조선에 실린 1/5 분량이지만 주위 해양과 해안선 2천 킬로미터가 시커멓게 뒤덮였다. 수거한 기름은 유출된 양의 1/10 정도 밖에 안 된다. 20년이 지났는데도 생태계 복구는 미완성이고 10년은 더 걸릴 거라 한다.

미국 의회는 1990년 바다를 운항하던 배가 사고로 전복돼 대규모의 해양오염이 발생한 경우 사고의 책임을 선장, 선원, 유조선사, 해양경찰 모두에 있다고 법으로 규정했다. 유류오염방지법이다. 누구라도 규정과 원칙을 철저히 지키지 않으면 범법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대형 유조선은 배의 바깥을 이중벽으로 만들어 사고가 나도 기름 유출이 최소화되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그리고 미국의 모든 중등교과 과정에서는 액손 발데즈호 사고와 해양오염의 참상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1995년 맬던 방직공장 화재 사건도 있다. 모피나 신소재 옷감을 생산하는 기업이다. 이 회사 에런 퓨어스타인 회장의 70세 생일날 저녁에 방직공장에 불이 나 화염에 휩싸였다. 며칠 동안 불길이 치솟을 정도의 큰 화재인데 불길 앞에서 70세의 퓨어스타인 회장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역에서 주민과 함께 뿌리 내린 공장이기에 공장이 모두 타버린다 해도 이 자리에 다시 공장을 짓겠다. 불이 나 일자리를 잃은 직원들에게 두달 간 임금을 지급한다. 두 달 뒤 공장이 완공되면 모두 재취업한다."

그의 약속은 지켜졌다. 두달 뒤 직원의 70%가 복직했고, 미처 복직 못한 직원들에게 다시 한 달치 임금이 추가됐고 의료보험 석달이 연장조치됐다. 그 후 모두 복직해 공장은 더 활기차게 돌아갔다. 기자들의 질문에 퓨어스타인 회장은 "그저 할 일을 하는 것 뿐"이라는 대답을 남겼다.

위기는 기회와 연결되어 있다. 큰 위기를 겪게 되면 그 사회나 조직은 자신들의 기본 가치와 목표를 다시 검토하게 된다. 세월호로 깨닫게 된 우리 사회의 기본 가치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었다. 그것이 복지이고 그걸 해내는 게 정치임을 국민 모두가 가슴에 새겼다.

기본 가치와 목표가 재정립되면 여기저기 흩어진 재원을 모아서 새로운 투자를 해야 한다. 숱하게 드러난 시스템의 허점들도 수리하고 법도 보완해야 한다. 그 모든 과정이 평상시라면 의도대로 이뤄지기 어렵지만 국민적 합의와 지지가 뚜렷한 위기 직후 국면에서는 가능한 일이고 해내야만 한다.

정치권과 정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고, 언론 역시 사고의 교훈을 잊지 않고 모든 사후 조치가 완료되기까지의 과정을 추적 감시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세월호의 교훈을 잊지 말고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치명적인 구멍일 수도 있지만 서로에게 방파제이고 구명정이기도 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