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77세 김모씨 2가지 필수요건 충족… 존엄사(死) 인정
판결직후 가족들 "인공호흡기 즉시 제거" 요구
대법원이 국내 처음으로 존엄사(尊嚴死) 인정 판결을 내린 21일 당사자인 환자 김모(여·77)씨는 3평 남짓한 병실에 홀로 누워 있었다.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9층 중환자실. 김씨는 인공호흡기가 1분에 12번씩 뿜어주는 산소에 의지해 459일째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대법원 선고로 그는 조만간 연명(延命) 치료를 중단하고 죽음을 맞게 된다.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이뤄지는 국내 존엄사 1호다. 이날 김씨의 침대 머리맡 창 밖으론 검게 깔린 비구름이 보였다.
김씨의 맥박은 분당 80회. 정상이다. 혈압도 괜찮다. 체온은 37도로 몸에선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김씨의 키는 145㎝, 몸무게는 75㎏이다. 중환자실에 입원한 후 체중이 15㎏ 늘었다. 하루 900칼로리의 영양 죽이 튜브를 통해 위(胃)로 공급된 덕이다. 의료진은 혈압 유지를 위해 몸무게를 조금씩 늘린다고 했다.
호흡기내과 박무석 교수가 신경 검사를 위해 김씨의 오른쪽 다리를 꼬집자 김씨는 순간적으로 다리를 움츠렸다. 통증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뇌기능은 남아 있는 것이다. 눈을 뜨게 하려 손을 대면 눈꺼풀을 반사적으로 질끈 감았다. 뇌사(腦死) 상태는 아니라는 의미다. 하지만 눈의 동공은 불빛에 반응하지 않았다. 뇌기능이 전반적으로 손상된 것이다. 정상에선 동공에 불빛을 비추면 동공은 축소된다. '뇌사 전(前) 식물인간' 상태에서 존엄사가 인정됐다는 점에서 이번 판결은 의미가 크다고 의료계는 분석했다.
- ▲ 21일 대법원이 존엄사 허용 판결을 내린 가운데 당사자인 환자 김모(여·77)씨가 입원한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에서 간호사들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김씨는 지난해 2월 폐암이 의심돼 기관지 내시경검사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가 조직검사 도중 예상치 못한 과다 출혈로 의식을 잃었다. 그 후 그는 식물인간 상태로 급속히 빠져들었다. 가족들은 소생 불가능 상태에서 생명 연장 치료를 받는 것은 김씨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며 인공호흡기를 떼어달라는 존엄사 소송을 냈다.
이후 재판 과정에서 복수(複數)의 외부 의료기관 의사들이 김씨 상태는 회복 불가능한 상태라고 판정했다. 남은 핵심 쟁점은 의식을 잃은 김씨 본인의 의사를 어떻게 확인하느냐는 것이었다.
가족들은 재판 과정에서 김씨가 수년 전 남편의 임종 때 "내게도 안 좋은 일이 생기면 호흡기는 끼우지 말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드라마에서 인공호흡기를 단 식물인간 장면이 나오면 김씨는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남에게 누를 끼치며 살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1·2심 법원은 가족의 증언과 평소 그의 생활신조를 봤을 때 이런 상황에서는 김씨가 존엄사를 원했을 것이라고 인정했다. 김씨의 의사를 '간접' 확인한 셈이다.
하지만 세브란스병원은 김씨의 상태가 사망이 임박한 단계가 아니며, 환자 본인의 의사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의료진이 임의로 인공호흡기를 뗄 경우 법적 분쟁에 휩싸일 수 있고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라며 소송을 대법원까지 이어 왔다.
결국 대법원은 ▲김씨가 소생 불가능하다는 것과 ▲김씨에게 존엄사 의사(意思)가 있다는 가족들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헌법상 환자는 진료 내용의 결정이나 변경을 요청할 자기(自己) 결정권이 있고 그것은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존엄사의 요건으로 ①환자의 의식과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생체기능의 상실을 회복할 수 없으며 ②해당 환자가 연명 치료를 중단하겠다는 의사가 있는 것으로 인정돼야 한다는 것을 제시했다. 또 해당 분야 전문의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이를 종합적으로 심사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이러한 절차와 요건이 갖춰진다면 소송 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무의미한 생명 연장 치료를 중단하는 것이 허용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의료 현장에서 이와 같은 요건을 갖춘 합법적인 존엄사가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김씨는 현재 자발적인 호흡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인공호흡기를 떼면 얼마 못 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가족들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병원이 연명 치료를 중단해주지 않아 할머니(김씨)와 우리가 오랫동안 고통받은 것이 유감스럽다"며 병원측에 즉시 인공호흡기를 제거해줄 것을 요구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조만간 병원윤리위원회를 열어 대법원의 존엄사 허용 결정을 어떻게 이행할 것인지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창일 의료원장은 "김씨의 상태는 아직 사망 임박 단계라고 볼 수 없는데 차마 우리 손으로 어떻게 인공호흡기를 뗄 수 있겠는가…"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김씨가 원했던 죽음의 방식이고 법원은 이를 인정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존엄사'라는 낯선 형태로 김씨를 떠나 보내게 된다.
존엄사
(尊嚴死·death with dignity)
말기 환자가 임종 단계로 들어갔을 때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영양치료 등 생명연장 의료행위를 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도록 하는 것. 미국 오리건주에서는 약물 투여 등 의사 조력을 받아 죽음에 이르는 것도 존엄사로 부른다. 1975년 미국 뉴저지주에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카렌 퀸란(여·당시 21)씨 부모가 인공호흡기 제거를 법원에 요청하면서 처음 논의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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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치료 중단 절차 등 구체적 기준 마련해야
대법원이 존엄사를 인정한 것은 의학적으로 사망선고를 받은 환자에게 무의미한 치료를 계속하는 것보다 스스로의 의사에 따라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길이라는 취지다. '사람답게 살 권리' 못지않게 '사람답게 죽을 권리'도 중요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은 서울 보라매병원에서 회복 가능성이 없는 환자를 퇴원시켜달라는 가족들의 요구를 들어줬다가 환자를 사망하게 한 혐의(살인방조)를 받은 의사 2명에게 지난 2004년 유죄를 선고한 이후, 5년 만에 연명치료 중단이 가능하다며 다소 전향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존엄사가 의료계 일부에서 오래전부터 사실상 묵인돼왔다는 현실과, 2002년 네덜란드를 시작으로 존엄사를 인정하는 서구 국가들이 점차 늘고 있다는 추세도 반영한 판결이라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품위 있게 죽을 권리 인정… 기준은 까다롭게
대법원은 다만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분명한 기준을 제시, 존엄사가 남발될 수 없도록 했다. 대법원은 "생명과 직결되는 진료행위를 중단할 것인지 여부는 생명권 존중의 헌법이념과 사회상규에 비추어 극히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대법원이 반드시 충족해야 한다고 정한 기준은 두 가지다.
첫째,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있는 환자에 국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환자의 의식이 회복 가능성이 없고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생체기능의 상실을 회복할 수 없으며 ▲환자의 신체상태에 비추어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한 경우에만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있는 환자로 볼 수 있다고 규정했다. 전문 의료진이 세 가지에 모두 부합한다고 판단하면 회복이 불가능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해당 환자가 연명치료를 중단하겠다는 의사가 있는 것으로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다. 타인의 뜻에 의해 존엄사가 남발되면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해석에 따라 가족이나 의료진의 의사로 치료가 중단돼선 안 된다고 못박은 것이다.
◆아직 기준이 모호… 구체적인 입법 필요
이번 대법원 판결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비중을 둔 판결로, 이미 식물인간이 된 환자 김모(여·76)씨가 과연 치료 중단을 원했는지가 가장 큰 쟁점이었다.
김씨 가족측 신현호 변호사도 "대법원이 (김씨의 의사에 대한) 주변정황이 갖는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준 결과 나온 판결"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떼어내고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는지를 명확하게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앞으로 또 다른 존엄사 판단에서 환자의 의사를 두고 첨예한 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작지 않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일단 "환자가 사전의료지시서 등 미리 문건으로 (치료 중단) 의사를 밝힐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평소의 가치관·신념으로 비춰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례로 남게 될 김씨의 경우 일상대화에서 "나는 저렇게까지 남에게 누를 끼치며 살고 싶지 않고 깨끗이 떠나고 싶다"고 말해온 점이 인정됐다. 하지만 평소 연명치료에 대한 언급이 없었던 젊은 사람이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식물인간이 됐다면 당사자가 연명치료를 계속 받겠다는 건지, 아니면 중단하겠다는 건지 의사를 알 길이 없다. 평소에 존엄사 의사가 있었더라도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이후에도 계속 존엄사를 원하는지도 판단이 어려운 영역에 있다.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들어선 경우'도 의견이 엇갈릴 소지가 없지는 않다.
다수 대법관이 정한 존엄사 기준에 반대한 이홍훈·김능환 대법관은 "김씨의 경우를 볼 때 아직도 기대여명이 4개월 이상으로 판정되는 등 상당수 환자의 경우에 돌이킬 수 없는 사망상태라고 단정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절차와 기준이 구체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하루빨리 존엄사의 세부기준을 규정한 입법(立法)이 뒤따라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아직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한 점과 종교계를 중심으로 존엄사 허용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는 점도 풀어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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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세계적으로 적극적 안락사는 한두 국가를 빼곤 불법행위로 돼 있는 반면, 미국·프랑스·독일 같은 나라는 연명치료를 받지 않고 품위 있게 죽겠다는 의사를 평소 글이나 유서 등으로 표현해 두면 존엄사를 허용한다. 그러나 우리는 존엄사에 대한 법과 제도가 전혀 없다. 2004년엔 보호자 요구로 뇌수술 환자를 퇴원시킨 서울 보라매병원 의사가 살인방조죄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래서 대부분 의사들은 환자가 가망이 없어도 치료를 멈추지 못한 채 '방어 진료'를 계속해야 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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