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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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4월 22일 (일) 20:01 동아일보
"[광화문에서/정성희]지구의 날 ‘이상한 침묵’"

[동아일보]
처음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부작용 때문에 지난날 ‘문명의 총아’가 새 시대의 공적(公敵)이 된 사례는 꽤 많다. 20세기 인간에게 많은 편익을 가져다주었으나 그보다 많은 폐해를 안긴 두 물질, 유연휘발유와 클로로플루오로탄소(CFC)는 미국의 엔지니어 토머스 미즐리가 발명했다. 제너럴모터스(GM) 소속 연구원이던 그는 1921년 테트라에틸납이 자동차 엔진의 노킹현상을 막아 준다는 것을 알아내고 이 물질을 섞은 유연휘발유를 개발해 히트를 쳤다.
유연휘발유의 폐해가 알려져 1970년 청정대기법이 제정되고, 1986년 미국에서 유연휘발유 판매가 금지되자 미국인 혈액의 납 농도는 80%가 감소했다. 하지만 대기 중에 한 번 배출된 납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 오늘날 인류는 한 세기 전의 인류보다 농도가 625배 더 높은 납을 혈액 속에 지니고 산다.
유연휘발유의 성공에 고무된 미즐리가 개발한 또 다른 물질이 프레온가스로 알려진 CFC다. 1930년대 대량 생산이 시작된 CFC는 자동차 에어컨, 냉장고, 스프레이 등 1000여 개 제품에 사용됐다. 이것이 가져 온 대재앙이 남극 상공에 뚫린 오존 구멍이다. CFC는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정도가 이산화탄소의 1만 배에 이르는 등 지구온난화를 부채질했다.
유연휘발유와 CFC는 인간이 생활의 편의만을 선택할 때 자연으로부터 어떤 보복을 당하는지 보여 주는 사례다. 그래도 우리는 미즐리를 비난할 순 없다. 그는 자신의 획기적 발명품이 인류와 환경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전개되는 상황은 그렇지 않다. 정교한 예측 기술 덕분에 우리는 불과 30년, 50년 후에 지구에서 일어날 일을 상세히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자 그룹의 강도 높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기후 불감증’에나 걸린 듯 조용하다. 기후 변화에 관한 유엔기본협약 가입을 거부한 미국에서조차 민주당 공화당 가릴 것 없이 의원들이 온실가스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기후 변화나 온실가스 감축에 대해 제대로 문제를 제기하는 정치인은 없다. 어제는 ‘지구의 날’이었지만 지구 환경의 치명적인 병을 걱정하는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는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느긋하다. 온실가스 저감대책을 산업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면서까지 현 정부에서 만들 용기는 없기 때문일까.
이상하기는 환경단체들도 마찬가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이슈는 정치화해 큰 목소리로 반대하면서도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캠페인 하나 벌이지 않는다. 영국에서는 제품 생산과정에서의 탄소 배출량을 표기하도록 하는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 운동이 민간단체 주도로 벌어지고 있다.
국내 사정이 이런지라 2020년까지 에너지 이용은 15%, 온실가스는 25% 줄이겠다는 내용의 ‘서울 친환경에너지 선언’에 기대를 걸어 본다. 평소 대기 질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여 온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한 시 당국이 막연한 목표가 아니라 구체적 액션플랜으로 이 중장기계획의 출발선을 확실히 다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온실가스 배출 감축 노력이 다른 지방자치단체로 확산되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환경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정성희 논설위원shchung@donga.com
"세상을 보는 맑은 창이 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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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부작용 때문에 지난날 ‘문명의 총아’가 새 시대의 공적(公敵)이 된 사례는 꽤 많다. 20세기 인간에게 많은 편익을 가져다주었으나 그보다 많은 폐해를 안긴 두 물질, 유연휘발유와 클로로플루오로탄소(CFC)는 미국의 엔지니어 토머스 미즐리가 발명했다. 제너럴모터스(GM) 소속 연구원이던 그는 1921년 테트라에틸납이 자동차 엔진의 노킹현상을 막아 준다는 것을 알아내고 이 물질을 섞은 유연휘발유를 개발해 히트를 쳤다.
유연휘발유의 폐해가 알려져 1970년 청정대기법이 제정되고, 1986년 미국에서 유연휘발유 판매가 금지되자 미국인 혈액의 납 농도는 80%가 감소했다. 하지만 대기 중에 한 번 배출된 납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아 오늘날 인류는 한 세기 전의 인류보다 농도가 625배 더 높은 납을 혈액 속에 지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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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휘발유의 성공에 고무된 미즐리가 개발한 또 다른 물질이 프레온가스로 알려진 CFC다. 1930년대 대량 생산이 시작된 CFC는 자동차 에어컨, 냉장고, 스프레이 등 1000여 개 제품에 사용됐다. 이것이 가져 온 대재앙이 남극 상공에 뚫린 오존 구멍이다. CFC는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정도가 이산화탄소의 1만 배에 이르는 등 지구온난화를 부채질했다.
유연휘발유와 CFC는 인간이 생활의 편의만을 선택할 때 자연으로부터 어떤 보복을 당하는지 보여 주는 사례다. 그래도 우리는 미즐리를 비난할 순 없다. 그는 자신의 획기적 발명품이 인류와 환경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전개되는 상황은 그렇지 않다. 정교한 예측 기술 덕분에 우리는 불과 30년, 50년 후에 지구에서 일어날 일을 상세히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자 그룹의 강도 높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기후 불감증’에나 걸린 듯 조용하다. 기후 변화에 관한 유엔기본협약 가입을 거부한 미국에서조차 민주당 공화당 가릴 것 없이 의원들이 온실가스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 기후 변화나 온실가스 감축에 대해 제대로 문제를 제기하는 정치인은 없다. 어제는 ‘지구의 날’이었지만 지구 환경의 치명적인 병을 걱정하는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는 범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느긋하다. 온실가스 저감대책을 산업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면서까지 현 정부에서 만들 용기는 없기 때문일까.
이상하기는 환경단체들도 마찬가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이슈는 정치화해 큰 목소리로 반대하면서도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캠페인 하나 벌이지 않는다. 영국에서는 제품 생산과정에서의 탄소 배출량을 표기하도록 하는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 운동이 민간단체 주도로 벌어지고 있다.
국내 사정이 이런지라 2020년까지 에너지 이용은 15%, 온실가스는 25% 줄이겠다는 내용의 ‘서울 친환경에너지 선언’에 기대를 걸어 본다. 평소 대기 질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여 온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한 시 당국이 막연한 목표가 아니라 구체적 액션플랜으로 이 중장기계획의 출발선을 확실히 다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온실가스 배출 감축 노력이 다른 지방자치단체로 확산되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환경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정성희 논설위원shchung@donga.com
"세상을 보는 맑은 창이 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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