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20 헤럴드경제=박혜원·김희량 기자] 연구윤리규정 구멍 ‘숭숭’
- 연구윤리규정 구멍 ‘숭숭’…“시간끌기 빌미 제공” [위기의 K-논문 ②]
- 2022.09.20 08:23
전문가“불명확한 규정, 악용할 소지 있어”
대학이 규정 위반해도 교육부 조치는 없어
상습적 연구부정 검증 미비…해외선 상식
[123RF] |
[헤럴드경제=박혜원·김희량 기자] 표절 등 연구부정행위 의혹이 제기되면 각 대학은 자체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연구윤리위)를 통해 조사를 담당한다. 하지만 책임 주체인 대학별 관련 규정이 부실해 검증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헤럴드경제가 서울 소재 대학 15곳(건국대·경희대·고려대·동국대·서강대·서울대·서울시립대·성균관대·숙명여대·연세대·중앙대·이화여대·한국외대·한양대·홍익대)의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규정을 살펴본 결과, 예비조사와 본조사 기간을 정해뒀지만 두 조사가 이어지는 기간을 모호하게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 대학들은 교육부가 연구윤리지침 훈령을 기본으로 연구윤리를 검증하는 절차를 가지고 있다. 대학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예비조사 ▷연구윤리위 승인 ▷본조사 ▷연구윤리의 승인 ▷총장 보고 순서의 틀을 지닌다.
그러나 위 대학 중 예비조사 이후 이 결과를 연구윤리위가 며칠 내에 승인해야 하는지 명시해둔 대학은 없었다. 일각에선 연구윤리위 승인기한을 명시하지 않아 빈틈이 발생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연구윤리지침은 법적 강제력이 부족하고 대학이 모호한 규정을 이용해 조사를 지연할 수 있어서다. 이인재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연구윤리 위반 검증 절차마다의 기한이 명확하지 않아 이 지점을 악용할 소지가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 대학 관계자는 “사안마다 특이성이 있어 일단은 교육부 훈령을 따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교육부 관계자는 “모호한 연구윤리위 규정이 훈령 위반 여지를 제공한다는 지적에 “해당 내용에 답변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조사 절차. [숙명여대 홈페이지 캡처] |
실제 이런 모호한 규정으로 조사가 지연되는 일이 발생한다. 숙명여대는 지난 2월 연구윤리위를 구성한 뒤 김건희 여사 논문에 대한 예비조사를 마쳤지만 6개월이 지난 현시점에서도 본조사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다. 숙명여대 규정에 따르면 예비조사는 제보를 접수한 날로부터 30일 이내 조사를 착수하고, 연구윤리위가 승인하면 30일 이내 본조사에 들어간다. 단, 예비조사 결과를 언제까지 승인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은 없다. 본조사는 판정을 포함해 ‘조사 시작일’로부터 90일 이내에 완료해야 하지만 사유가 있을 경우 연장이 가능하다. 이때 기한은 명시돼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숙명여대 관계자는 “(해당 사안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통해 의결하는 과정에 있다”며 “본조사 여부 결정이나 예비조사 결과 등 진행 경과는 비공개”라고 말했다. 연구윤리위원회의 절차가 위원 보호 등을 이유로 기본적으로 비공개로 진행된다. 이에 졸업생으로 구성된 민주동문회와 재학생, 교수협의회 등이 조사를 촉구하고 있다.
대학 자체 조사가 지연돼도 교육부가 강제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교육부 훈령이 각 대학이나 연구기관을 시의적절하게 따라가지 못해 문제가 벌어지기도 한다. 국민대는 지난해 7월 김건희 여사의 박사학위 논문 의혹이 나온 후 조사위가 꾸려졌지만 검증기한(5년) 만료로 조사 불가 판단을 내렸었다. 그러나 교육부 훈령은 2011년 개정되며 연구부정행위 검증 시효가 삭제된 상황이었다.
이에 교육부가 검증 시효를 삭제한 훈령을 근거로 국민대에 재조사를 지시했다. 사실상 1년이 넘게 지난 올 8월에서야 판정 결과가 나왔다. 국민대는 훈령 위반에 대해서 법제처에 유권해석을 신청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교육부에서는 이에 대한 별도의 제재를 내리지 않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이 연구윤리 훈령을 위반했을 때 교육부에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규정하고 있는 건 없다”고 답했다.
이렇게 대학과 교육부 훈령 간 시차가 계속 발생한다면 올해 발표한 교육부 지침 개정안도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교육부는 지난 2월 대학 등의 장이 요청하거나 교육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전문기관에서 직접 조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행정 예고했다.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은 표절 의혹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과거 다른 연구에서의 위반 여부까지 조사한다. [한국연구재단의 '연구부정행위 검증 및 처리 관련 연구윤리 실무 매뉴얼(2014)'] |
이 밖에도 전문가 사이에선 국내 연구윤리 검증 체계가 해외에 비해 미비한 곳이 많다는 비판이 나온다. ‘상습성’에 대한 검증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연구부정은 수차례에 걸쳐 이뤄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13년 논문 17편을 조작한 것이 드러나 해임된 서울대 수의과 강수경 교수 사례가 대표적이다. 강 교수는 초기 14편에 대해서만 서울대에 조작 의혹이 접수됐으나 자체 조사 과정에서 3건이 추가로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에 해외에선 연구부정 의혹 당사자의 과거 전력까지 살피는 과정이 보편적이다. 예를 들어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은 표절 의혹 당사자에게 예비조사 단계에 보내는 질의서에는 ‘과거 NSF에 제출된 논문‧보고서‧제안서 중 적절히 인용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까?’라는 항목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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