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박 20220923] 검통령이 된 대통령의 웃씁픔[=웃기지만 씁쓸하고 슬프다
검통령이 된 대통령의 웃씁픔[=웃기지만 씁쓸하고 슬프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이 나라의 모든 일을 스스로 책임지고 해야 하는 것을 모르는 듯하다. 그는 마치 "그래 내가 책임질 테니 네가 잘 알아서 해 봐!"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런데 그의 일하는 꼴이 "논문 표절자에게 교육부총리의 일을 맡기는 식"이고, "조문하러 떠난 외교에서 조문을 하지 못하는 식"이며, "바이든 아메리카 대통령과 48초 대화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수모를 당한 뒤 뒤돌아서서 전 세계가 지켜보는 카메라 앞에서 본인이 검사 시절 즐겨쓰던 욕설로 뒷다마를 까는 장면이 생중계되는 외교 참사를 불러들이는 식"이라는 게 문제다!
윤 통은 국정 전체를 스스로 통할[=다스림]할 줄 모르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는 아직도 검찰 총장처럼 행동한다. 그는 자신에게 보고되거나 제안되는 것을 '슬쩍' 검토한 뒤 '머리'를 재빨리 굴린 뒤 '시원하게' 결론을 내린 다. 그는 그 결과가 나빠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처음에는 다들 서툴 수밖에 없으니' '너희들이 이해하라'는 투로 발뺌을 하거나 '그 정도는 잘했다고 봐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 그리고 그는 아마도 술을 한 잔 하러 가는 모습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꿈바라기가 있어야 한다.
그는 실무자가 아니라 미래의 설계자이어야 한다. 미래는 과거와 현재에 토대를 두어야 하기에 '꿈지으미'는 우리의 모아리[=공동체]가 이루어온 정체성을 명확히 깨닫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그 안의 다양성과 복잡성을 모두 샅샅이 살펴볼 줄 알아야 한다. 꿈지으미는 모라리의 '현실'에 두 다리를 굳게 디딘 채 '더 높은 미래'로 두 팔을 뻗어야 한다. 자칫 팔의 방향이나 높이가 어긋나는 순간 현실 자체가 와르르 무너질 수도 있다. 현실의 아무리 작은 조각 하나일지라도 그것이 부서지면 그 조각 위에서 평생의 삶을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다. 그렇기에 대통령은 그 어떤 것도 즉흥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북돋을 수 있는 '길'을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대'는 '크다'는 뜻이다. 큼은 상대적 개념이다. 지구는 달보다 크지만 해보다는 작다. 이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검찰 총장의 크기와 대통령의 크기도 이와 같다.
윤석열 대통령은 모든 나람[=나라 사람=국민]의 삶을 보듬어 살펴야 할 '최종 책임자'이지 '법의 잣대'에 따라 범죄자를 처벌하는 임무를 떠맡은 실무자가 아닌 것이다. 검찰총장의 그릇으로 대통령 노릇을 하려 해서는 결코 안 된다! 그것은 나람 모두를 범죄인처럼 취급하려는 태도와 같다. 그것은 나람을 모욕하고 공포에 떨게 하는 악행이 된다. 악행은 끝내 처단되고 만다!
검통령이 된 대통령은 스스로 나람의 분노를 자아내게 만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