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은 왜 성공했나? 절망이 불러온 영화보다 더 슬픈 20대의 자화상
오징어 게임은 왜 성공했나? 절망이 불러온 영화보다 더 슬픈 20대의 자화상
- 정재영 인턴기자
- 최초승인 2021.10.26 07:10:14
- 최종수정 2021.10.2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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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왜 성공했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경제적 양극화, 한탕주의, 극심한 빈부격차 등 우리사회의 다양한 문제들로부터 탄생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이에 더해, 결국 궁극적으로 '오징어 게임'이 성공한 이유는 젊은 세대가 공유하는 ‘절망의 확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있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08년에 처음 구상하고 2009년에 영화로 극본을 쓰기 시작했는데 수위는 세고 돈은 많이 드는 작품이었죠. 사회적, 문화적으로도 낯선 시기였던 것 같아요. 이상하고 현실성이 떨어지는 작품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투자자, 배우들에게 다 거절을 당했어요.”
“그런데 10년이 지나 이런 살벌한 서바이벌 이야기가 어울리는 세상이 됐고 현실감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듣네요. 빈부격차는 더 커지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한탕주의 세상이 와 버린거죠. 슬프게도 세상이 그렇게 바뀌었어요.”
불과 10년 사이에 무엇이 그렇게 바뀐 것일까. ‘현실감 있다’는 공감대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
▲양극화 심화와 사회 내부로 확산되는 ‘편가르기’
대한민국 사회가 경제·사회적으로 많은 측면에서 양극화가 진행 중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코로나19는 이를 더 가속화 했다.
우선 양극화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무대는 ‘부동산 시장’이다.
종합주택 매매가격지수. (사진=한국부동산원 부동산통계뷰어 캡처)
지난 10년 사이, 부동산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특히 최근 2년간 상승폭이 극적이다. 원인에 대해서 다양한 분석이 있겠지만, 결과만 놓고 봤을 때 현재 무주택자가 노동 수입만으로 주택 구입 자금이나 이자를 감당하는 것은 확실히 요원해 보인다.
결국 우리 국민이 주택을 보유한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으로 나뉜 셈이 된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서는 주택을 보유한 집단 내에서도 '실질적' 주택 보유자와 그렇지 못한 주택 보유자로 다시 나뉘어 편이 갈리고 있는 형편이다.
우선적으로 주택을 보유한 사람은 상대적인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특히 빚 없이 마련해 투자용으로 구매한 주택의 가격이 폭등한 경우면 함박 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은퇴한 1주택자는 그나마도 서글프다. 어차피 살아야 할 집이고, 다른 곳에 이사를 갈 수도 없는 노릇인데 내야 할 세금만 늘어났기 때문이다.
여기까지가 ‘그나마 괜찮은 형편의’ 사람들의 이야기다. 엉덩이 붙힐 주택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무주택자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집을 살 마음을 먹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정부의 대출 규제 정책으로 인해 융자 마련이 힘들어진 점은 말할 것도 없고, 금리 인상 이야기까지 슬금 슬금 나오는 상황에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건 못할 짓이다. 또 완화되기는 했지만 전세자금대출까지 제한될 수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이 사다리를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서글픈 민낯이다.
임금근로자 지수. (자료=통계청, 그래픽=KB경영연구소)
노동 시장은 어떠한가. 그래도 정규직 노동자의 경우에는 처지가 낫다. 본인이 일용근로자, 임시근로자라면 이러한 주택시장 상황이 더 뼈아프게 다가올 것이다. 지난 3년 사이, 임금근로자 내에서도 양극화가 심각 해졌기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1분기 기준 일용근로자와 상용근로자의 임금 격차는 정점에 다다랐다.
젊은 세대가 소위 ‘괜찮은 직장’에 입사하기 위해 충혈된 눈으로 고군분투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던 셈이다. 코로나19로 경제가 위축되고 고학력 대졸자는 계속 배출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경쟁은 더 심화되고 있다.
자영업자 대출 금융업권별 대출 잔액. (자료=한국은행, 장혜영 의원실, 그래픽=한겨레)
자영업자는 더 절망적이다. ‘편조차 못 가를’ 상황이기 때문이다.
고강도 거리두기 정책으로 제대로 된 영업을 못하게 된 지 2년이 다 되어 간다. 경영난으로 자금을 차입해보아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인데, 대출을 받지 않으면 폐업을 해야만 한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나아지겠지, 생각해요”
기자가 음식점을 운영하는 A씨에게도, PC방을 운영하는 B씨에게도, 카페를 운영하는 C씨에게도 들은 이야기다. 그렇게 쌓인 자영업자 대출액이 2021년 1분기 기준 약 830조원에 이른다. 이 중 약 281조원은 ‘비은행권’에서 차입 된, 정말로 절박한 상황에서의 SOS성 대출이었다.
기사 표제 캡처 (출처=중앙일보)
기사 표제 캡처 (출처=머니투데이)
나혼자산다 방송 장면. (사진=방송화면 캡처)
▲ 더 잘 공유되는 ‘상류 사회’…상대적 박탈감과 ‘한탕주의’
이렇듯 경제 사회적 양극화가 전반적으로 더 극심해지고 있는 가운데,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와 미디어의 유명인에 대한 ‘관찰 예능’의 급격한 팽창은 심리적 양극화를 부채질 했다. 유튜브, 가상화폐 등으로 ‘벼락 부자’가 된 일반인의 이야기는 이제 흔한 기사 소재가 됐다.
‘오징어 게임’ 광풍의 배경을 읽기 위해서는, 스트리밍 미디어 서비스의 주 이용자 층인 MZ세대의 시선과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이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고 이로 인해 한탕주의로 내몰리는 이유는 뭘까.
MZ세대는 인터넷 커뮤니티로 사회상을 읽는다.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끼리 모인 사이트에서 의견을 주고 받으며, ‘자신이 어떠한 사회에 살고 있는가’를 속한 커뮤니티 집단의 렌즈로 비춰 해석한다.
게임이나 오락 방송을 하던 인터넷 스트리머가 구독자 수십만의 유튜버가 되어 매월 수 천만원 씩 버는 소식이 실시간으로 커뮤니티에 퍼진다. 가상화폐로 수백억, 수십억대 자산가가 된 20~30대 청년들과 벌써 은퇴를 했다는 청년 ‘파이어족’ 관련 기사들은 하루를 멀다 하고 쏟아지고, 공유된다.
소셜미디어는 어떠한가? 인스타그램 속 화려한 일상은 그들의 평범한 삶을 비루하다고 느끼게 한다. 재벌 2세, 연예인들이 공유하는 일상은 ‘저 하늘의 별’이다. 일부 젊은 세대는 이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모방하다 재정적 위협을 겪기도 한다.
미디어로 접하는 세상은 이렇듯 화려한데, 실제 그들의 삶은 참으로 팍팍하다. 하늘 모르고 치솟은 주택 가격,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간신히 확보할 수 있는 그나마 괜찮은 일자리, ‘공부하면 성공한다’는 부모의 말에 입시에 매달린 결과 돌아온 ‘학벌 무용론’과 일부 고위 공직자·정치인들의 입시 비리까지.
MZ세대의 마음 속에 ‘수단’보다 ‘결과’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자리잡게 된 이유다. 열심히 공부하여 명문대를 나오고 대기업에 들어가든 라이선스를 취득하든 뭐 어쩌겠는가? 그래서 살림살이가 나아지겠는가? 공정을 부르짖어 돌아온 결과는 어떠했는가?
2020년 7월 9일 열린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정규직전환 추진 관련 공익감사 요구 시위. (사진=조선일보)
돌아온 것은 ‘평등’이라는 명목으로 그간의 노력이 더욱 헛되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정부 정책이었다. 그들이 '그래도 과정이 중요하겠지'라고 생각 할 일말의 ‘명분’마저 짓밟힌 셈이다. 이것이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 정규화 사태에 MZ세대가 그렇게 분노한 것을 집단적 이기심의 발현이라고 보기 보다, ‘억울함’의 표현으로 봐야 할 이유다.
또 그나마 취직한 젊은 세대들이 마주한 것은 세력화 된 귀족 노조였다. 경쟁이 훨씬 덜 한 시절 입사해, 연차가 쌓여 윗자리에 있으면서, 자신의 기득권은 공고하게 지키며 ‘더 노력하라’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MZ세대는 다시 한 번 ‘억울함’을 느꼈을 것이다.
결국에는 유튜브 방송으로, 비트코인으로 크게 ‘한 건’ 해낸 젊은이들이 선망을 얻으며 사다리 저 위에 있는 형편이다. MZ세대는 그들이야 말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금전적으로도 풍족한, 모두들 꿈꾸는 인생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새롭게 등장한 신흥 롤모델들은 ‘인플루언서’로 통칭되며 젊은 세대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다. 이 인플루언서들은 본인의 영향력을 활용해 축소판 ‘오징어 게임’을 벌이기도 한다.
유튜브 채널 ‘피지컬갤러리’의 웹예능 ‘가짜사나이’ 스틸컷 (사진=유튜브 캡처)
유튜버 진용진 씨가 진행했던 ‘머니 게임’, 전현직 특수부대 출신들에게 강하게 훈련 받는 과정을 버텨내는 이야기를 그린 ‘가짜 사나이’ 등 각양각색 미디어 믹스가 젊은 세대를 유혹했고,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 번만 버티면 성공할 수 있다.’ ‘최후 승자가 되기만 하면 명예와 돈, 다 가질 수 있다.’
젊은 세대는 상금을, 얼굴을 알리는 것을 목적으로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다. 일확천금을 얻기 위해서는, 신체적 자유의 포기도 불사할 만 하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이러한 메시지는 기록적인 ‘코인 광풍’도 낳았다. 즉, 한탕주의가 사회 전반으로 팽배하게 퍼진 것이다. 지금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빚을 내서라도 가상 화폐나 주식에 투자하지 않는 사람은 ‘바보’ 취급을 받는다. 정부의 현금 지원과 대출 완화가 '마지막 한 방'을 위한 실탄으로 쓰이는 셈이다.
연합뉴스 일러스트 (사진=연합뉴스, 제작 박이란)
▲구체제의 몰락…’과정’이 아닌 ‘결과’에 집중하게 된 사회
한탕주의의 확산은 ‘구체제의 몰락’을 가져왔다.
낭만 가득한 20대 초반의 캠퍼스. 열심히 공부하는 취업준비생. 치열한 스펙 경쟁. 경쟁 끝에 얻은 안정적 직장. 연애와 결혼. 내 집 마련. 육아…
십년전만 해도 그럴 듯 하게 들리던 이 ‘괜찮은 인생’의 포물선은 지금으로선 어떠한 매력도 없다. 우선, 열심히 공부하고 스펙 경쟁한다고 취직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괜찮은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고등 교육을 받은 대졸자는 무더기로 양산되고 있다.
연애와 결혼은 어떠한가? 현 20대는 전에 없던 남녀 갈등을 겪고 있다. 결국 연애 생각도 요원해지는데, 집값 폭등으로 결혼 할 기반 마련도 어려워 졌으니, 이 부분에 대해 기대도 없어지는 것이다.
또 지금 대학생들은 무언가 공부하고 있지만, 진정으로 그 직업을 통한 소명 성취를 위해 공부하진 않는다. ‘남들이 다 하니까’, ‘안 하면 불안하니까’ 하는 것이다. 관성적으로 무언가 공부해야겠다는 강박 관념은, '코딩 학원' '유튜브 학원' 등 교육이 또 다른 교육을 낳는 소위 '웃픈' 현실의 편린을 낳았다.
유명무실화 된 ‘구체제의 사다리’라는 굴레에 갇힌 젊은 세대가 목적 의식을 잃고 깊은 우울감에 빠진 것은 결국 당연한 수순이다. 부모 세대에게서 들어온 것은 ‘열심히 공부하고 정직하게 살면 살 길이 열린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이들에게, 지금 처한 상황은 참 녹록치 않게 됐다.
절벽에 내몰린 젊은이들은 가상화폐 투자, 유튜브 올인, 오디션 참가 등으로 ‘오징어게임’에 임한다.
그런가하면 오징어 게임의 참가를 포기하고, ‘숨만 쉬며 살자’는 종류도 적지 않다. 집도, 결혼도, 번듯한 직장도 모두 포기한 채 삶을 살아가기만 하는 것도 벅차다는 것이다.
마지막 오징어게임에 필사적으로 참여했지만 패배한 젊은이들은 어떻게 될까. 가슴 아픈 일이지만, 통계청의 자살 통계가 이를 간접적으로 답해준다.
통계청 ‘2020년 사망 원인 통계’를 2015년 이후 시계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5년간 20대 남성의 자살자는 19.7% 증가했고, 20대 여성 자살자는 64.5% 급증했다. OECD에서 자살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대한민국인 것으로도 나타났다. '자살 공화국'이 한층 더 명성을 높인 셈이다.
하나는 명백하다. 이들이 단순히 물질적인 헛된 허영심에 현실판 ‘오징어 게임’에 참가해 꽃다운 젊음을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 무엇이 이들을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았는가?
그것은 절망이다.
일자리도, 살 곳도 구하기 힘든 그런 절망. 이런 와중에도 누군가는 고급 스테이크를 썰고 SNS에 공유하고 있을 때, 컵라면으로 한 끼를 해결하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과 망연자실함. 보지 않으려 해도, TV SNS 뉴스 기사로 종일 이어지는 '잘 사는 인생' 릴레이. 그리고 붕괴된 구체제, 대안을 말해줄 수 없는 어른 세대.
드라마 '오징어게임' (사진=연합뉴스)
▲오징어 게임과 ‘절망’…맞닿아 있는 ‘절망의 세계화’
오징어 게임은 이 절망스런 상황을 극적으로 잘 묘사해냈다. 그렇기에 폭 넓은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성기훈(이정재 분)은 작 중 경마에 빠진 아버지로 분한다. 그는 경제적 자립 능력을 상실한 이후로, 딸의 양육권도 빼앗긴 처지다. 그에게 남은 것은 ‘경마’와 ‘오징어 게임’으로 대변되는, 마지막 한 방 뿐이다. 이를 통해 잃어버린 양육권을 되찾고, 사회에서의 자리를 되찾고자 한다.
‘쌍문동의 자랑’ 조상우(박해수 분)도 같은 처지다. 조상우라는 캐릭터는 ‘구체제의 몰락’을 더욱 집중적으로 비춘다. 명문 S대학교를 나와 증권사에서 일하던 그는, 한 방을 노리며 진행한 ‘선물’ 거래로 몰락하며 종래에는 진짜 ‘마지막 한 방’, ‘오징어 게임’에 참여하게 된다.
강새벽(한미녀 분)과 알리 압둘(아누팜 트리파티 분)은 자국인도 힘든 현실 속에서, 이방인으로서 느끼게 될 한층 더 높은 현실의 벽과 이로 인해 파생된 한탕주의를 대변하는 인물들이다. 그들은 현실의 ‘막다른 길’에 마주쳐 대안 없이 게임에 참여한다.
이는 ‘상대적 박탈감’, 혹은 ‘마지막 한방’을 노리며 게임에 참가한 성기훈과 조상우에 대비되며, 이방인의 처지를 더욱 극적으로 조명하는 서사적 장치로 읽을 수 있다.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게 된 것도 같은 지점에서 나온다. 양극화, 박탈감, 이로 인한 절망, 그리고 '본국인도 힘든 상황'에 들어와 차별 받는 소수계층.
오징어 게임의 등장인물들은 결국 이런 범용적인 소재를 의인화 한 알레고리인 셈이다. 이런 은유를 통해 세계 각국의 사람들도 공감을 느끼게 된다. 그들의 시각에서 분명히 이질적인 외모로, 이질적인 게임을 하고 있는데도 사람으로서 가지는 그 본연의 감정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이게 오징어 게임이 성공한 이유다.
‘절망’ 속에 외치는 절규는, 귀에 더 날카롭게 파고들기 마련이니까.
정재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