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남편은 내가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이 아니다
[국정농담] 속 터져서 폭소로 바뀐 강경화의 "남편은 못 말려"
윤경환 기자 입력 2020.10.10. 23:00 수정 2020.10.11. 02:18 댓글 382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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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이일병, 정부 '여행 자제'에도 요트 사러 미국行
국민은 고향도 못갔는데..민주당도 이례적 격앙
康 "송구, 또 송구" 이른 사과에도 논란 이어지다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 아냐" 국감 발언에 '반전'
"우리집에도 그런 남편 있다" "추미애보다 낫다"
'남편 리스크'는 국정동력에 계속 부담 될 수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서울경제] 남편이 정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지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해외여행을 떠나는 바람에 벼랑 끝까지 몰렸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위기를 탈출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다른 여권 정치인들과 달리 비교적 이른 사과와 솔직한 태도로 정면 대응한 게 통했다는 평가다. 특히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남편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를 가리켜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 아니다”라고 발언하며 상당수 국민들의 공감까지 얻어낸 분위기다. 문재인 정부 장수 장관으로서 거취 논란은 일단락 된 셈이다. 다만 큰 위기는 지나갔다 해도 그의 남편 행보에 곱지 않은 시선은 여전히 남았다. 외교부가 앞으로 ‘해외여행 자제’ 조치를 연장하고 다른 나라에 K-방역 성과를 홍보할 때마다 남편 사례가 회자되는 상황은 강 장관의 국정 추진에 부담이 될 전망이다. <관련기사> ▶[단독] 강경화 남편, 2월 '베트남 여행 최소화 권고' 중에도 호찌민 관광
지난 2017년 청와대에서 열린 강경화 외교부 장관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한 강 장관과 남편 이일병(오른쪽) 연세대 명예교수. /연합뉴스
이일병, 정부 ‘여행 자제’에도 요트 사러 미국行 논란 강 장관의 남편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는 지난 3일 미국으로 돌연 출국하면서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특히 출국 목적이 서민들은 상상도 못할 ‘요트 구매’라는 사실에 비판 여론은 더 들끓었다.
이 교수는 공항에서 여행 목적을 묻는 KBS 취재진에 “그냥 자유여행을 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해외여행 자제를 권고했다는 지적에는 “코로나가 하루 이틀 안에 없어질 게 아니지 않느냐”며 “맨날 집에서 그냥 지키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답했다.
이 교수의 이번 미국행이 무엇보다 논란이 된 건 그의 배우자가 수장으로 있는 외교부가 3월23일부터 전 세계를 대상으로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별여행주의보는 해외여행 자체를 금지하지 않지만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여행을 취소하거나 연기할 것을 권고한다. 여행자 개인뿐 아니라 국가 전체 방역을 위한 조치다.
특히 이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지난 2월에도 베트남 호찌민을 관광했다고 전했다. 당시만 해도 베트남은 1월23일 첫 감염자가 발생한 이래 꾸준히 확진자가 늘고 있는 추세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월 초 ‘중국 외 지역 내 전파 확인 또는 추정 사례’가 보고된 국가로 싱가포르·한국·일본·말레이시아·베트남·태국·미국·독일·프랑스·영국·스페인·아랍에미리트 등 12개국을 지목했다. 정부는 이에 11일 중국과 교류가 많은 싱가포르·일본·말레이시아·베트남·태국·대만 등 6곳에 대해 우선적으로 해외여행을 최소화할 것을 권고했다. 이 교수가 전쟁박물관과 호찌민시 박물관 등을 찾았다고 밝힌 시점은 그 직후인 12일(현지시간) 오전이었다.
그는 베트남을 다녀온 이틀 뒤 해외발 감염에 따른 대구 코로나19 확산 속에서도 카리브해로 여행을 떠났다. 6월에는 그리스 지역으로 여행을 계획했다 취소하기도 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하필 ‘추석 이동제한’ 시기에... 민주당까지 격앙 이 교수의 행동은 하필 “이번 추석엔 부모님도 뵙지 마라”는 정부의 ‘이동 제한’ 지침 시기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더 공분을 샀다. 예기치 못한 논란에 격앙된 반응을 보인 건 야당이나 일반 국민뿐 아니었다. 이례적으로 더불어민주당까지 비판 행렬에 가세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4일 “국민의 눈으로 볼 때 부적절했다”며 유감을 표시했고 김태년 원내대표도 “고위공직자, 그것도 여행 자제 권고를 내린 외교부 장관의 가족이 한 행위이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신영대 대변인도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은 부적절한 처사임이 분명하다”며 “코로나19로 명절 귀성길에 오르지 못한 수많은 국민께 국무위원의 배우자로 인해 실망을 안겨 드린 점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의혹이 더 컸던 조국 전 법무부장관, 추미애 법무부 장관, 윤미향 민주당 의원 때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였다.
김은혜 국민의힘 대변인은 같은 날 “코로나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는 죽어 나가는데 고관대작 가족은 여행에 요트까지 챙기며 ‘욜로’를 즐기는 그들만의 추석, 그들만의 천국”이라며 “국민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며 자신들은 이율배반적인 내로남불을 일삼는 문재인 정부의 고급스러운 민낯”이라고 비판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도 상무위원회의에서 “모두의 안전을 위해 극도의 절제와 인내로 코로나19를 견뎌온 국민을 모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남편도 설득하지 못하는 외교부 장관이 해외 인사들과는 외교를 어떻게 하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국회에서 인사하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강경화 “남편 미루고 미루다 떠나... 송구, 또 송구” 4일 오전까지만 해도 개인사라는 이유로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히지 않던 강 장관은 여론이 심상치 않게 흐르자 같은 날 오후 실·국장들과의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처음으로 입을 뗐다. 강 장관은 이 자리에서 “국민들께서 해외여행 등 외부활동을 자제하시는 가운데 이러한 일이 있어 경위를 떠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강 장관은 회의 이후 외교부 청사를 떠나면서 기자들과 만나 “송구스럽다”는 입장을 반복하면서 “(남편이) 워낙 오래 계획하고 미루고 미루다가 간 것이라서 귀국하라고 얘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 장관은 이어 “여행계획을 사전에 알고 있었고 설득도 했다”면서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본인도 잘 알고 있었고 결국 본인이 결정해서 떠났다”고 설명했다.
이후 강 장관은 일단 말을 아끼는 쪽을 택했다. 강 장관은 5일 서울 외교부 청사로 출근하면서 평소 이용하던 2층 로비 대신 지하 주차장을 통해 사무실로 이동했다. 취재진을 피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됐다. 이날 오후 비공개로 전환된 주한 쿠웨이트대사관 방문 때도 기자들과 만나 “조문 시간이 예정돼 있어서 그냥 가겠다”며 관련 언급을 피했다. 조문이 끝난 뒤 외교부 청사로 복귀하는 길에서는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이 교수와) 계속 연락은 하고 있다”며 “이 교수도 굉장히 당황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같은 날 자신이 운영하던 공개 개인 블로그 2개를 지난 갑자기 모두 비공개 또는 폐쇄 처리했다.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 /연합뉴스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 아니다”... ‘빵 터진’ 국감장 강 장관의 승부수(?)는 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나왔다. 강 장관은 이날 국감 시작부터 스스로 먼저 사죄의 뜻을 전했다. 그는 또다시 “경위를 떠나 매우 송구스럽다”며 “외통위원님들의 많은 질의와 질타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에 성실하고 진솔하게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특히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과의 질답은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다. 이 의원이 “남편이 오래전부터 여행을 계획했는데 말렸어야 한 게 아니냐”고 지적하자 강 장관은 “개인사이기 때문에 말씀드리기 뭐하다”면서도 “남편은 내가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순간 국감장에선 곳곳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질문을 던진 이 의원도 웃음보를 터뜨렸다. 강 장관의 예상을 벗어난 솔직함 때문에 나온 반응이었다.
강 장관은 외교부가 국내에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했던 시기에 국민 불편이 없도록 미국과 여행길을 열어 놓으려고 애를 썼고, 현재 국민 1만5,000∼1만6,000명이 여러 이유로 매달 미국에 간다고 설명했다.
강 장관은 그러면서 “그렇게 가는 것을 보고 그때 문 열어놓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그런 생각도 있었으니 더 적극적으로 말리지 못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어 “국민에게 실망을 드리고 코로나 사회적 거리 두기로 위축된 어려운 심리를 가진 상황에서 물의를 일으킨 데 대해 송구스럽다고 다시 한 번 말씀드린다”며 재차 사과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연합뉴스
“우리 집에도 그런 남편 있다” “추미애보다 백번 낫다” “내 남편을 말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강 장관의 국감 발언은 그를 둘러싼 여론을 단번에 반전시켰다. 질의를 한 국감장의 이태규 의원이 “적반하장 식 태도를 보이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보다는 훨씬 낫다”고 호평했고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도 “배우자께서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신 것 같다”며 “솔직히 이 문제로 강 장관을 코너로 몰고 싶지 않고 측은지심도 든다”고 말했다. 강 장관 남편 관련 공방이 길게 이어질 것이란 예상과 달리 해당 문제는 강 장관의 솔직하고 빠른 사과로 외교부 국감에서 큰 이슈가 되지 않았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오프라인에서도 “이해한다”는 국민들의 반응이 크게 늘었다. “우리 집에도 말릴 수 없는 남편이 있는데 이제 포기했다” “처음엔 화가 났지만 이제는 강 장관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 나이대 남편들 부인 말 거의 안 듣는다” “주변 유부녀들은 다 공감하더라” 등 부부생활의 어려움에 맞장구치는 아내들의 긍정 반응이 많았다. “민주당과 현 정부 인사 중 바로 사과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는 반응도 많았다.
강 장관의 대응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비교하는 지적도 여기저기서 나왔다. 강 장관의 경우 법적 문제가 없는 상황인데도 솔직한 사과로 잡음을 끊었는데, 추 장관 등은 이를 정쟁처럼 대응하면서 오히려 일을 키운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강 장관 발언 관련 기사를 링크하고 “추미애보다 백번 낫네요. 그냥 사과하면 되잖아요”라고 말했다.
강 장관에 대한 교체론도 일단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분위기다. 다만 아직도 온·오프라인 상에선 “남편을 말리지 못한다는 말로 그냥 넘어가려 하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찮게 나온다. 당장의 궁지에서는 벗어났지만 이 교수가 미국에서 무엇을 하고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강 장관은 당분간 ‘남편 리스크’를 안고 장관직을 수행할 수밖에 없게 됐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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