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광(門化光)’을 ‘광화문’으로…. 광화문 현판을 한자가 아닌 훈민정음체로 바꾸자는 시민운동이 시작됐다. 문화 예술 분야 인사들로 구성된 ‘광화문 현판 훈민정음체로 시민모임’은 14일 오후 3시 서울 종로 자하문로 역사책방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올 한글날에 맞춰 한자 광화문 현판을 훈민정음체로 교체하자는 시민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치겠다”고 밝힌다.
‘시민모임’은 이 자리에서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제70호)의 글자꼴을 바탕으로 실제 크기의 2분의1로 시험축소 제작한 힌글 광화문 현판을 공개한다. 강병인 공동대표(멋글씨 작가)는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광화문’ 글자를 집자한 현판을 일단 만들어보았다”면서 “시민들의 이해를 돕기위한 시험제작이며, 향후 전문가들의 집중검토를 통해 정밀하게 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재준 공동대표(서울여대 교수)는 “시험제작했을뿐인 훈민정음체 ‘광화문’ 현판이 얼마나 아름다우냐”고 반문하면서 “한글의 첫모습으로 제작된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은 한글 글꼴의 가치를 만천하에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병인 대표는 “대한민국의 상징이자 얼굴인 광화문의 현판이 지금대로라면 ‘문화광(門化光)’으로 읽힌다”면서 “젊은 세대도. 외국인들도 알 수 없는 한자현판을 다는 것은 시대착오”라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광화문 광장은 1898년 만민공동회가 육조거리와 인근지역에서 열린 이후 경제개발과 민주화 시대를 거쳐 촛불 시민혁명에 이르기까지 시민 스스로 역사를 써온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재준 대표는 “훈민정음체로 집자한 광화문 글자의 점 모음(‘광’과 ‘화’의ㅏ, ‘문’의 ㅜ)은 하늘과 사람을 상징한다”면서 “이것은 사람이 스스로 하늘같은 존재임을 깨닫는다는 의미를 갖고있다”고 밝혔다.
광화문에 한글 현판이 달린 예가 있기는 하다. 원래는 경복궁 중건 당시인 1865년(고종 2년) 훈련대장 임태영의 글씨로 내건 한자현판이었지만 한국전쟁 때 문루가 불타면서 소실됐다. 1968년 광화문 복원 당시에도 처음엔 한문체인 ‘문화광(門化光)’이었다.
그러나 공사 과정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가로쓰기 한글체인 ‘광화문’으로 둔갑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추진한 한글전용화 정책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1968년은 한글전용화 5개년 계획의 원년이었다. 하지만 박정희 현판글씨는 처음부터 논란이 됐다.
현판식에 참석한 서예가이자 정치인인 윤모 국회의원이 박정희의 현판글씨를 보고는 “아니 저걸 글씨라고 썼어!”라고 큰소리로 욕했다가 곁에서 ‘대통령’이라고 쿡쿡 찌르자 “그래도 뼈대 하나는 살아있구먼!”하고 위기를 넘겼다는 이야기가 떠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이듬해 현판글씨를 다시 써서 걸었다고 한다.
결국 2010년 8월 임태영의 글씨를 복원한 ‘門化光’ 현판을 걸었지만 이후 또다른 문제가 생겼다. 현판이 균열된 것이다. 4개월만인 12월 문화재위원회는 사적분과를 열어 현판의 재제작을 결정했다.
이 와중에서 한글단체를 중심으로 “이 참에 한글 현판을 달자”는 의견이 끈질기게 제기됐다. 문화재청은 2011년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3000명을 전화조사하고, 4대궁 및 종묘방문객 2000명을 대상으로 대인면접조사를 실시한 끝에 한글(58.7%)을 한자(41.3%)보다 선호한다는 답변이 나왔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의 경우 광화문 현판에 대한 전문지식 결여로 인해 대표성이 부족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왔다. 이어 벌어진 현판 글씨 관련 공청회 및 토론회에서는 한자 현판이 우세했다. 문화재위원회 합동분과는 2012년 12월 회의를 열어 ‘1865년 고종 중건 당시의 모습대로 원형 복원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함으로써 ‘훈련대장 임태영의 한자 현판’으로 최종결정됐다. 이후 또하나의 변수가 생겼다.
‘흰색바탕에 검은색 글씨로 복원한 것’이 어쩐지 이상하다는 지적이 잇달았다. 심층조사에 나선 문화재청은 미국의 스미소니언 박물관 소장자료와 궁중화사 출신 안중식(1861~1919)의 1915년 작품인 ‘백악춘효(白岳春曉)’(2점) 등을 토대로 광화문 현판이 ‘어두운 바탕에 밝은 색’의 글씨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문화재청은 마침내 지난해 8월 문화재위원회에서 광화문 현판을 ‘경복궁 중건당시 훈련대장 임태영의 글씨를 검은색 바탕에 황금빛 동판에 새기는 것’으로 최종 결정했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은 임태영의 한자 현판을 ‘검은색 바탕에 황금빛 동판글씨’로 제작해놓은 상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미 광화문 현판은 한자로 제작완료했다”면서 “적당한 전통안료를 정해 칠하는 단계만 남았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현판제작이 완료되면 적절한 공개시기를 정할 방침이다.
하지만 이번에 ‘광화문 현판을 훈민정음체로 시민모임’이 결성되고 실제 ‘훈민정음체 현판’을 시험제작함으로써 다시 한 번 논쟁의 불씨를 지필 것 같다. 시민모임의 강병인 대표는 “임태영의 한자현판은 한국전쟁 때 불탄 사라졌고, 지금 복원된 현판은 작은 사진으로만 남은 임태영의 현판을 스캔·보정해서 쓴 것”이라면서 “그러니 글자의 기운이 없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즉 현재의 한자 현판은 도쿄대(東京大)의 1902년 유리건판 사진과 국립중앙박물관의 1916년 유리건판 사진을 근거로 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100년도 더 된 오래된 작은 사진의 글자를 확대해서 다듬고 만지다보니 원본과는 다른 서체가 되었고 서예가 요구하는 기운생동도 없다는 것이다.
한재준 교수는 “숭례문이나 흥인지문 같은 다른 문과 궁궐의 전각 등의 이름까지 한글로 바꿀 필요는 없다”면서 “다만 대한민국의 얼굴이자 상징공간인 광화문의 현판 만큼은 한글, 그것도 훈민정음체로 내걸자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재준·강병인 대표는 “광화문 현판을 훈민정음체로 바꾸는 것은 한자로 박제된 광화문 광장을 미래세대와 공유하는 시민광장으로 바꾸는 운동”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문화재청 관계자는 “경복궁은 기본적으로 1865년 고종 중건당시의 모습대로 복원하는 것이 원칙”이라면서 “2010~12년 사이 벌어진 한글단체와 한자 단체 사이 소모적인 대립과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당시 한자관련 단체들은 “우리 말과 글이 대부분 한자의 음과 뜻을 갖고 있으며 광화문(光化門·빛으로 만물을 교화시키는 문)이 지니는 뜻을 설명하자면 한자로 된 현판을 내걸어야 한다”고 주장한바 있다. 이들 단체는 또 “문화재 복원은 역사성이 중요하다”면서 “경복궁 창건과 중건 당시는 엄연히 한자문화권이었기 때문에 한자 현판을 단다고 해서 주체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현판을 한글, 그것도 훈민정음체로 바꾸는 자체도 21세기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따라서 한글·한자 논쟁은 어떤 광화문 현판이 걸리든 이어질 것 같다. 결코 소모적인 논쟁으로만 볼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