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교 1분만에 하교..'원격 학평'이 낳은 이색 풍경
등교 1분만에 하교..'원격 학평'이 낳은 이색 풍경
송경모 기자 입력 2020.04.24. 10:33서울시교육청 주관 전국연합학력평가(학력평가) 문제지 및 답안·해설지가 24일 공개됐다. 전국 단위의 성적 평가를 하지 않기로 하면서 사실상 시험 취소나 다름없지만 시험지를 받아 집에서 ‘자체 평가’에 나서려는 고3 학생과 학부모들이 아침부터 부지런히 학교를 찾았다.
24일 오전 8시, 서울 강남구 경기고 정문 일대에는 시험지를 받아가려는 차량이 일시에 몰려들었다. 서울시교육청이 시험지를 각 학교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공개하기로 했지만 ‘종이시험지’를 여전히 선호하는 탓이다. 이날 각 학교에서는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드라이브 스루’와 ‘워킹 스루’ 형태로 시험지를 배부했다. 강남경찰서 소속 경관 2명이 교문 바깥에서 호각을 불며 교통정리에 나섰다.
학교는 문제지 수령 시간대와 장소를 분산해 학생 및 학부모가 같은 시간대에 몰리는 것을 방지했다. 고3은 7시20분부터 8시까지, 고1과 고2는 8시부터 8시40분까지 학교를 찾도록 사전에 고지했다.
문제지를 받아갈 수 있는 장소는 세 곳으로 나눴는데, 드라이브 스루 배부대를 정문 쪽에 한 곳, 워킹 스루 배부대를 정문과 후문에 각각 한 곳씩 운영했다. 사전에 방문 희망자 수요를 조사할 때 아예 어느 곳에서 받아갈지까지 조사했다.
트레이닝복과 청바지 등 편안한 차림에 마스크를 쓴 학생들은 정문을 통과하자마자 비접촉 체온계로 발열 여부를 측정했다. 그 다음 문제지를 받기 위해 학년별, 계열별로 구별돼있는 책상 앞에 줄을 섰다.
바닥에는 노란색과 초록색 테이프가 2m간격으로 붙어 있었고, 배부를 돕던 교사들은 학생들이 앞 학생에 너무 바짝 붙어서진 않는지 살폈다. 학생 한 명이 발열검사를 통과하고 문제지를 나눠주는 교사들과 안부 인사를 나눈 뒤 베이지색 봉투를 받아들어 돌아서기까지 1, 2분이면 충분했다.
차량들은 교정을 한바퀴 돌아나오며 드라이브 스루 전용 배부대에서 문제지 봉투를 수령했다. 일부 차량에는 ‘3사’(3학년 사회탐구), ‘2과’(2학년 과학탐구) 등의 문구가 적힌 A4용지 크기의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경기고 측 관계자는 “사전 수요조사를 한 다음 학생들에게 나눠준 테이프”라며 “학년과 계열을 일일이 물어보는 시간을 단축해 좀더 빠르게 배부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경기고 측에 따르면 전교생 1157명 중 사전 수요조사에서 시험지 방문 수령을 희망한 학생은 499명이었다. 그런데 막상 당일이 되자 더 많은 학생·학부모들이 현장을 찾았다는 게 학교의 설명이다.
학교 관계자는 “집에서도 파일을 내려받아 출력할 순 있지만 보통 가정에 (시험지 사이즈인) A3용지가 없지 않느냐”며 “학생들이 수능 용지와 규격 면에서 같은 시험지로 좀 더 실전에 가까운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 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1학년 석모(16)군도 “집에 프린터가 없어서 시험지를 직접 받으러 왔다”고 말했다.
시험지 배부는 안전하게 진행됐지만 전국 단위 성적 처리가 이뤄지지 않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일부 있었다. 1학년 송모(16)군은 “친구들 사이엔 시험을 봐도 등급이 나오질 않으니 별 의미가 없다며 시큰둥해하는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 경기고 교사는 “(전국 단위 성적 처리가 돼서) 등급이 나오면 아무래도 선생님들 입장에서 학사지도하기에도 좋다”며 “하지만 지금은 여건이 안 되니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고 말함.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