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훔쳤지"알바생에 누명 씌우고..근무 안한 딸에 월급 지급
"돈 훔쳤지"알바생에 누명 씌우고..근무 안한 딸에 월급 지급
헤럴드경제 입력 2016.10.20. 11:40 수정 2016.10.20. 13:43청소년 체불임금 쉽게 포기 악용
일용직·비정규직·청년 알바생등
전체 임금체불노동자 20% 차지
정부의 ‘솜방망이 처벌’도 한몫
전문가 “후진적 노동환경의 비극”
울산에서 식당 5곳을 운영하면서 억대의 외제차량 2대를 몰고다니는 음식점업주 A씨. 지난 1월 군입대를 앞둔 대학생 B씨가 일한지 한달 정도 됐을때 ‘도둑’으로 몰아붙여 월급 120만원을 한푼도 주지 않았다. B씨가 손님들과 계산하는 과정에서 거스름돈을 꺼내는 장면만 교묘히 편집하는 등 CCTV 화면을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업주 A씨의 파렴치한 행위는 들통났다. 경북 구미·칠곡에서 4개 PC방을 운영하는 C씨는 주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거나 군대에 입대하기 전 청소년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한 뒤, 이들이 시간상 어려움으로 체불임금을 쉽게 포기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전화연락을 회피하는 방법으로 상습적으로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신종 ‘열정페이’ 테크닉인 셈이다.

경남 통영에서 조선업 1차 협력업체를 운영하는 D씨는 25억원을 체불한 상태에서 수차에 걸쳐 법인자금 1억여원을 처의 계좌로 출금해 개인용도로 사용하고, 회사가 어렵다며 근로자 임금을 삭감하면서도 실제 근무하지 않는 딸을 근로자로 허위등재해 4400만원의 임금을 지급했다.
체불임금이 매년 늘어나고 있다. 8월까지 체불액 9741억원으로 추정한 올해 체불임금은 1조4196억원으로 2009년의 1조3438억원을 넘어서 역대 최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체불임금은 2012년 1조1772억원, 2013년 1조1930억원, 2014년 1조3195억원 등으로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지난해 1조2993억원으로 잠깐 주춤했지만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올해 8월 현재까지 신고된 피해 노동자만 21만4052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0% 늘어난 수치다. 신고된 금액을 바탕으로 만든 통계인 만큼 신고도 못한 ‘숨은 체불임금’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올해 체불임금 규모가 늘어난 이유로 경기침체와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을 꼽는다. 하지만 ‘잃어버린 20년’을 보낸 일본과 비교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리보다 경제규모가 3배 가량 큰 일본의 2014년 임금체불 노동자는 3만9233명, 체불액 규모는 131억엔(1440억원)에 불과해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10배는 많다.
임금체불의 가장 큰 문제는 주된 피해자가 일용직, 비정규직, 청년 아르바이트생 등 노동취약계층이라는 점이다. 올해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한 청년은 4만4000명으로 전체 임금체불노동자의 20.7%나 됐다. 체불액은 940억원에 달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임금체불을 겪은 노동자 54.7%가 임금도 못받은 채 실직자로 전락했다.
임금체불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은 체불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업주들의 그릇된 인식 때문이다. 임금으로 줄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아예 ‘돈을 임금으로 줄 생각’이 없는 것이다. 사업주들의 이런 인식에는 ‘솜방망이 처벌’도 한몫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임금체불 사업주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그친다. 정부의 감독체계도 불충분하다. 국내 180만개 사업장을 감독할 근로감독관은 1000여명에 불과하다. 1명이 1800개 사업장을 감독하는 셈이다. 이러다보니 올해 체불금액 9471억원 중 근로감독관들의 지도를 통해서 해결된 금액은 절반에도 못미치는 4266억원이다. 전문가들은 “정규직을 줄이고 인건비와 노동자의 권리를 뒤로 돌리는 우리나라의 후진적인 노동환경이 만들어낸 비극”이라며 “정부는 근로감독을 강화하고 체불노동자를 위한 사회안전망을 만드는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대우 기자/dewki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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