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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없는 학자-프리 사이언스’(www.csf-free-science.org

사이박사 2015. 1. 10. 18:18

문화

학술

‘학문자유 위협하는 힘’ 학자들이 뭉쳐 깨야죠

등록 : 2011.02.23 19:23수정 : 2011.02.23 19:23

소송·연구비 앞세운 탄압에 ‘공동대응’ 주장
‘김이태·오세철 사건’ 겪은 한국도 동참 검토

‘프리 사이언스’ 출범 주역 가리구 교수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고 평가받는 프랑스 학계에서 학문·연구의 자유를 위한 국제연대를 천명하는 학자들의 비정부기구(NGO)가 출범해, 이명박 정부 들어 특히 학문과 연구의 자유가 점점 위축받고 있는 한국 학계에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프랑스어권 학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국경 없는 학자-프리 사이언스’(www.csf-free-science.org, 이하 프리 사이언스)는 25일(현지시각) 프랑스 국회 대강당에서 정식 창립행사를 열 계획이다.

이 단체는 창립 선언문에서 “학문의 독립성은 정치·경제권력 앞에 더욱 무력해지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 학자들은 물리적 위협까지 받고 있다”고 진단하고, “전세계에서 연구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의 진전에 공헌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현재 인문·사회·자연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500여명의 학자들이 창립 선언문에 서명한 상태다. 아직까진 주로 프랑스 및 유럽, 일부 아프리카 학자들이 참여하고 있으나, 국제연대를 통해 활동 범위를 더욱 넓혀갈 계획이다. 프리 사이언스 집행위원회 쪽과 현재 단체의 핵심 인사로 활동하고 있는 알랭 가리구(사진) 파리10대학 정치학 교수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내용을 자세히 들어봤다.

프리 사이언스 활동이 시작된 직접적인 계기는, 가리구 교수 자신이다. 프랑스에서는 2000년대, 특히 사르코지 정권이 들어선 뒤 국가가 학문의 자유를 제도적으로 약화시키고 학자들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져왔다는 것이다. 대학 학제의 개편, 연구자금관리공단 설립 등 학문의 발전보다는 영미식 평가주의에 입각한 관료주의, 경제주의를 앞세운 정책이 프랑스 사회와 학자들의 반발을 불렀다.

2008년 대통령 특별보좌관이자 여론조사 전문가인 파트리크 뷔송이 자신이 세운 여론조사 회사를 통해 대통령궁이 발주하는 모든 정치여론조사에서 독점권을 누리며 거액의 금전적 이익을 거둔 사실이 밝혀졌다. 이를 계기로 정치권, 여론조사 기관, 유력 언론사, 경제계 등이 여론조사를 매개로 끈끈하게 유착되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선거에 관한 사회사 전문가인 가리구 교수는 신랄한 비판에 나섰고, <리베라시옹>과의 인터뷰에서 뷔송을 ‘정치꾼의 하수인’에 비유했다.


뷔송은 곧 명예훼손을 주장하며 10만유로의 보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따라 “사실상 정부가 부추긴 ‘전략적 봉쇄소송’(SLAPP : 사회적 비판을 봉쇄하기 위해 거액의 소송을 제기하는 행위)”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으며, 가리구 교수를 지지하는 학계·사회의 움직임으로 연결됐다고 한다. 지난 16일 가리구 교수는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동안 구명 활동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다른 비슷한 사례들을 접하게 된 학자들이 학문·연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학자들 스스로의 국제 행동에 나서게 된 것이다.

쿠르드족을 연구하는 터키 학자 프나르 셀레크에 대한 구명 활동은 대표적 사례다. 셀레크는 광범위한 쿠르드족 인터뷰 명단을 달라는 터키 정부의 요구를 거절한 뒤 폭탄 테러 사건의 관련자로 몰려 옥고를 치렀다.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도 했지만 11년째 소송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다. 헝가리에서는 국가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학자들이 정권이 바뀐 뒤 ‘물갈이’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헝가리철학협회가 이에 반발했으며, 독일철학협회는 지지의 뜻을 밝혔다. 위르겐 하버마스를 비롯한 독일철학계는 지지의 뜻을 담은 편지를 프리 사이언스 집행부로 보내왔다고 한다.

가리구 교수는 “학자들은 저널리스트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약한 위치에 있지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공고한 연대를 조직해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독재 국가의 열악한 상황은 물론이거니와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는 사회에서도 학문을 쥐고 흔드려는 ‘힘’은 보편적으로 작동하고 있는데, 그동안 학자들이 이에 맞서려는 실질적인 행동에 나서지 못했다는 것이다. 학문의 자유가 비교적 보장됐다고 알려진 프랑스에서 이런 움직임이 시작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그는 “거액의 전략적 봉쇄소송, 연구자금 배분, 승진 등을 앞세운 ‘새로운 종류의 힘’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국가마다 사회마다 힘의 압력이 다르고 그에 대한 학자들의 인식도 다른 상황 속에서 보편적인 학문의 자유를 어떻게 추구할 수 있는가? 가리구 교수는 “우리는 가장 어려운 상황에 있는 학자와 학문그룹을 지지한다는 ‘현실적인’ 원칙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프리 사이언스는 ‘국경 없는 의사회’처럼, 당장 학문의 자유를 침해당하고 있는 학자가 있다면, 그를 지지하고 구명하는 ‘즉각적’ 활동을 앞세우고 있다.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것을 앞세우다 보면 “추상적인 사상 논쟁에 빠질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곧 학문의 자유는, 누군가 만들어주는 것이라기보단 그 필요성을 인식하고 주장하는 학자들 손에 달렸다는 것이다. 가리구 교수는 “학문의 자유는, 학자 개개인이 처한 각자의 상황을 직시하려고 하는 노력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프리 사이언스는 그 활동을 세계적으로 알려 더 많은 학자들의 뜻을 모으고, 오는 5월께 학문·연구의 자유를 주제로 한 국제학술대회를 열 예정이다. 집행위원회 쪽은 “한국 학계에서도 적극적인 참여가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학술단체협의회 대표를 맡고 있는 조돈문 가톨릭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연구비 지원을 내세운 보이지 않는 압력 등 학문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며 “이런 국제연대에 동참할 수 있을지 검토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4대강 정비계획의 실체는 대운하”라는 양심 선언을 한 뒤 징계를 받았던 건설기술연구원의 김이태 연구원, 사회주의 사상에 입각한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전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위원장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심사과정에서 1위 평가를 받고도 한국연구재단 연구사업 공모에서 떨어졌던 비판적 연구소들의 사례, 연구비 확보를 위한 연구자들의 자발적인 자기 검열 등을 보자면, 우리나라에서도 학문의 자유는 역시 여전히 멀고 먼 과제이기 때문이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프리 사이언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