곪아터짐, 터져나옴_그것만 안했어도, 그것만 막았어도, 통제만 했어도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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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사회정책부 기자 방담
구조 지휘하던 海軍 대령 "군인이 아픈건 不忠"이라며 死線 넘으면서도 다시 배 타
무조건 '최선 다했다'는 정부 "배 몇척, 몇백명이 수색중" 허황된 정보가 음모론 키워
검찰이 해결 못하는 일까지 너도나도 고소·고발부터… "불장난 밝히는 檢" 자조도
팽목항은 지옥도(地獄圖) 같았다. 검은 바다에서 칼바람이 불어왔다. 가족 수백명이 핏발 선 눈으로 대통령과 총리에게 삿대질을 했다. 높은 사람들이 체육관 단상에 올라갔다가 잇달아 욕먹고 자리를 떴다.
침몰 열흘 만에 처음으로 가족에게 박수받은 사람이 나왔다. 김진황 해군 대령이었다. 그는 천안함 폭침 때도 구조 작업을 지휘했다. 그는 미사여구를 쓰지 않았다. 허황된 약속도 없었다. 간단명료하게 현장 상황을 브리핑했다. 그래도 목숨을 걸고 있다는 게 온몸으로 전해졌다.
참혹한 해였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우리 이만큼 왔다" 소리를 참 쉽게 했다. 그게 얼마나 섣부른 오만함인지 2014년 한 해가 깨우쳐줬다. '세월호 침몰'로 시작해 '조현아 사태'로 끝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회부·사회정책부 기자들이 우리 사회를 돌아봤다.
◇지붕이 아닌 직업윤리가 붕괴
―2월 경주 마우나리조트 지붕이 눈[雪]의 무게를 못 이기고 무너져 대학 신입생 등 10명이 숨졌다. 두 달 뒤 세월호가 침몰했다. 반년 뒤 판교 환풍구 붕괴 사고가 났다. 이 모든 안전사고에는 공통점이 있다.
―참사 전에 아무도 원칙대로 하지 않았다[잘못들이 첩첩 쌓여터짐,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곪아터짐, 적폐(사이)] 눈만 제때 치웠어도, 구조변경과 과적만 막았어도, "위험하니 내려오라"고 통제만 했어도 없었을 참사였다. 누구 하나 직업윤리가 투철했다면 막을 수 있었다. 수많은 개개인이 책임의식 없이 일해온 결과가 첩첩이 쌓여, 대형 참사가 됐다.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람이 이준석 세월호 선장이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고(故) 요시다 마사오(吉田昌郞·1955~2013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장은 죽을 결심을 하고 마지막까지 발전소에 남았다. 반면 이준석 선장은 맨 먼저 팬티 바람으로 도망쳤다. 그 사람이 조금만 다르게 행동했어도 가족과 국민이 이만큼 충격받진 않았다.
―앞으론 이런 일이 없을까?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땅콩 때문에 "나 이 비행기 세울 거야"라고 했다. 황당한 지시다. 문제는 기장이 그 지시를 따랐다는 점이다. 기장은 오너의 말 한마디에 250명이 탄 비행기를 실제로 회항시켰다.
◇덮어놓고 "최선 다했다"는 정부
―참사가 터지면 중앙정부는 덮어놓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세월호 침몰 초기 정부가 "무슨 배를 몇 척 동원했다" "몇백명이 수색 중"이라는 보도 자료를 계속 뿌렸다. 현장에 가보니 구조선은 일부만 도착한 상태였다. 몇백명이 다 잠수하는 게 아니라 기상이 안 좋아 몇 사람이 잠수 시도만 거듭하고 있었다. 실상을 안 국민이 몇 배 더 분노했다. 그 뒤론 정부가 뭐라고 해도 "못 믿겠다" 소리가 나왔다. 정부 스스로 음모론의 빌미를 제공했다.
―"관할이 아니라서" 소리만 없어져도 좋은 나라가 된다. 476명을 태운 배가 침몰한다는 신고가 들어왔는데, 진도 VTS와 해경은 서로 "관할이 어디냐"고 물었다. 시신 수습 과정도 황당했다. 타지(他地)에서 변사하면 그 지역 검찰이 '검사 지휘'를 해줘야 고인을 집으로 데려갈 수 있다. 목포지청 검사들은 사건 발생 열흘이 다 되도록 목포에 앉아 그 일을 했다. 심야에 앰뷸런스 타고 도착한 유족에게 "법원 가서 가족관계증명서 떼오라"고도 했다. 법원 직원은 집에 가고 없었다. 비판이 빗발치니 그제야 검사들이 팽목항에 내려왔다.
―와중에도 서울에선 광역버스가 입석 손님을 가득 태운 채 시속 100㎞로 질주했다. "문제 있다"고 기사를 쓰니까 국토교통부가 다른 출퇴근 대안도 없이 무작정 입석 손님만 제한하려다 분노를 샀다. 그 버스는 지금도 똑같이 달리고 있다.
◇너도나도 '검찰'을 찾지만…
―노무현 정부 때부터 이념 갈등이 계속 격화됐다. 정부 안에서도 '언론이 비판하면 소송으로 대응하라'는 분위기가 번졌다. 실체도 없고 책임도 안 지는 '인터넷 여론'의 힘이 점점 세졌다.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문제, 사회적으로 타협해야 할 문제까지 너도나도 검찰에 고소·고발부터 한다.
―가령 '정윤회 문건'을 누가 어떻게 유출했는지 밝히는 것까지는 검찰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러나 비선 실세가 정말 있는지 규명하는 건 다른 문제다. 설령 비선 실세의 존재를 밝혀냈다고 치자. 정윤회씨가 돈을 챙긴 게 아니라면 법으로 처벌하기 어렵다. 거기서부턴 법이 아니라 대통령이 정무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안이다. 그런 문제까지도 검찰에 넘기니, 검찰은 검찰대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사건을 잔뜩 떠안고, 국민은 국민대로 불만이 폭발한다. 검찰은 '불장난'을 밝히는 곳이 아니다.
―칠곡 계모 사건처럼 사회적으로 폭발력 있는 사건을 법원과 검찰이 제때 제대로 수사해 엄벌하지도 못했다. 국민의 법 감정이 폭발하면 뒤늦게 "다른 혐의도 추가로 적용하겠다" "국민이 납득할 만한 판결을 하겠다"고 나섰다.
◇비극을 세일즈하지 마라
―누군가 뭔가 하나 띄우면 수많은 인터넷 업체가 '클릭 수 경쟁'을 하느라 확인도 안 하고 그대로 받아쓴다. 더 자극적으로, 더 눈물 나게, 더 분노하도록 비극을 세일즈했다.
―세월호 수색 현장에서 한 민간 업자가 "다이빙벨 하나면 전부 구할 수 있다"고 허풍을 떨었다. 한 인터넷 매체 기자가 그걸 퍼뜨렸다. 그때 속으로 '우리가 틀려도 좋으니 차라리 그 보도가 맞기를…' 하고 바랐다. 결과는 허망했다. 다이빙벨이 아무 소용 없다는 게 판명된 뒤 그 기자는 유족들에게 잡힐까 봐 마스크를 쓰고 팽목항을 떠났다. 그런 사람이 이후 다이빙벨을 가지고 영화까지 만들었다. 한국 사회의 현주소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