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박사 2007. 1. 31. 07:47
『요코 이야기』 사태에 대한 문학동네의 입장




『요코 이야기』는 2005년 4월 발간 당시 언론과 독자들로부터 남성 중심의 폭력적인 역사 논리에 묻힌 여성들의 고통과 공포를 잘 드러낸 반전 평화 소설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1월 17일 이후 논란이 제기되면서 이 작품은 특정 부분만이 부각되어 과거사에 대한 왜곡을 담고 있는 일본의 일부 역사교과서나 일본 고위 관료의 극우적 망언과 동일하게 수용되는 예상치 못한 반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별첨자료 3 참조)


『요코 이야기』는 어떤 소설인가

이 책은 일제 패망 무렵 한국의 나남(청진)에 살고 있던 요코 가와시마 웟킨스 가족의 일본으로의 귀환기이자 일본 정착기입니다. 나남을 출발하여 일본에 당도한 이후에도, 그들은 수시로 생명의 위협, 굶주림, 공포와 충격으로 미쳐버리는 사람들 등을 만나며 참혹한 현장을 살아냅니다. 전쟁이 초래한 혼란과 참상을 통과하면서 12세 소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에 이르고, 군국주의 일본의 정체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 됩니다. 우리는 이 소설에서 이전에는 접하지 못했던 패망한 일본인들의 심리상태와 일본 사회를 만날 수 있었고, 이전까지는 누구도 거의 주목하지 않았던 ‘발언권이 없었던 또다른 존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또 그들이 던지는 말이기에 훨씬 더 강력한 반전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출간을 망설였던 이유

그러나 출간을 결정하기까지는 고민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이 일본인 요코 가와시마 웟킨스 모녀의 수난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보니, 우리가 오래 전부터 알아왔던 역사의 모습과 다른 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 소설에는 ‘군복 입은 한국인’들이 군복을 입은 일본인들뿐만 아니라 군복을 입지 않은 일본인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장면도 간혹 등장하는데, 저자는 자세한 묘사를 하지 않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일본의 군복 입은 자들을 보다 혐오하는)을 간접적으로 제시할 뿐 ‘군복 입은 한국인’들이 왜 그러한 행위를 하게 되었는지를 밝히지 않음으로써 한국인들을 가해자로 보게 만들 위험성도 있어 보였습니다. (별첨자료4 참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책을 출간하기로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점들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목한 점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과 수탈이 우리의 삶을 돌이킬 수 없는 고난과 절망에 빠뜨렸고 지금도 많은 분들이 일제 시대의 피해로 인해 아직까지도 고통받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또한 한일 양국의 역사 인식의 차는 아직도 좁혀지지 않고 있으며, 일본 극우세력은 노골적인 역사왜곡 움직임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코 이야기』의 출간을 결정했던 것은 이 책을 통해, 일본민족=가해자, 우리민족=피해자라는 기존의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는 충분히 논의될 수 없었던 ‘여성에게 가해지는 전쟁폭력’의 문제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요코 이야기』는 ‘군복 입은 일본 남자’에게 구타당하여 실신하는 ‘일본인 소녀’에 대한 장면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런가 하면 군복 입은 일본 남자들을 혐오하면서도 그들과 같은 폭력을 행사하는 군복 입은 조선 남자들의 이야기처럼 우리에게 불편한 장면도 나옵니다. 이처럼 이 책은 남자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고통받는 여성들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 소설의 작가이자 주인공인 요코는 아버지와 오빠가 부재한 상황에서 어머니와 언니로 구성된 여성들끼리 연대하여 전쟁의 참화 속에서 강인한 생명력을 이어갑니다. 우리 민족도 그렇지만 그녀들 역시 일본 남자들이 일으킨 전쟁의 희생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코 모녀는 이 전쟁을 견뎌내는 과정에서 그녀들만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세계의 주인공으로 거듭 태어나고 있습니다. 그녀들이 서로의 안전을 위해 각자 자신들의 욕망을 억누르고 상대를 동정하고 보살피는 과정은 전쟁의 재앙을 극복하는 인간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이 소설에는 분명 우리와 다른 시각과 다른 생각이 담겨 있고, 논란의 소지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우리 사회와 역사를 성찰하는 데 참고할 만한 요소가 적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충분히 일독할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한국어판 출간이 갖는 의의

특히『요코 이야기』가 동아시아 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로서 미국에서 널리 읽히고 있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일본의 출판사들로부터 거부된 점에 대하여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은 반일감정 때문에,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자국에 대한 비판 때문에 출판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현재 일본이나 중국이 동아시아 지역 연대를 표방하면서도 그들 사회가 아직도 ‘군복 입은 남자들’의 논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권 국가들의 진정한 화해와 연대를 위한다면『요코 이야기』처럼 ‘군복 입은 남자들’의 역사와는 다른 방식으로 역사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근대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가장 극심한 수난의 길을 걸었던 한국이 먼저『요코 이야기』를 수용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오빠를 구해준 조선인들에 대해 깊은 고마움을 표하는 대목이 들어 있기도 한『요코 이야기』를 내면서, 그리고 “일본 정부는 세계의 수많은 젊은 사람들을 비참하게 만들었습니다. 폭탄을 터트려 사람들을 죽이고, 이산가족을 만들고, 집도 없이 굶주리는 고통을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라는 한국어판 작가서문을 실으면서, 우리는 이런 생각을 독자들과 함께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졌습니다.


미국 한인사회의 ‘읽기 교재 채택 반대운동’에 대하여

하지만, 1월 17일 이후 이 책을 둘러싸고 국내에서 벌어진 논란은 우리가 예상했던 범위를 크게 벗어나는 것이었습니다. 이 논란의 요점은, 이 책이 미국의 중학 과정에 읽기 교재로 채택되어 있다는 것, 그로 인해 한국의 현대사와 한국인의 이미지에 대해 미국의 청소년들에게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인사회의 어린 자녀들이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부끄러워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책이 어떻게 한국에 버젓이 번역 출간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한인사회에서 최근 일고 있는 『요코 이야기』의 ‘읽기 교재 채택 반대운동’은 동일한 역사적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 역시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일제의 침략 행위와 잔혹한 식민지 지배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미국의 청소년들에게 단지 이 한 권의 소설만을 읽힌다는 것은 매우 우려할 만한 일입니다. 미국 청소년들의 올바른 역사관과 균형 잡힌 시각을 위해서도 이는 시정되어야 할 일이라는 데에는 우리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일부 지역 학교에서 이 책을 ‘읽기 교재’로 채택하는 것과 한국에서의 번역본 출간이 동일한 선상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우리 사회는 일제의 침략과 잔혹한 억압의 역사에 관해 모르지 않습니다. 우리 독자들에게 이 소설은 주체적 능동적 비판적 독서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최근 미국 한인사회에서 일고 있는 ‘읽기 교재 채택 반대운동’과 관련해서 이 책의 한국어판 출간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그 취지에도 불구하고 균형 잡힌 시각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명백한 것은 상황이 바뀌었다고 해서 이 책의 한국어 번역본 출간에 대해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2년 전 출간 당시 다수의 언론 매체와 독자들에 의해 반전 평화 소설로 평가받았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우리 역사를 성찰케 하는 데 일독의 가치가 있는 책을 출간했다는 사실은 그 나름의 의의를 인정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결정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사정에도 불구하고 짧지 않은 숙고와 논의 끝에 이 책의 발행과 판매를 중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1월 17일 이후, 저자 요코 가와시마 웟킨스의 개인사와 관련하여 제기된 의혹 때문입니다. 정확한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채 소설 속에 등장하는 저자의 부친이, 현재 여러 가지 근거에서 731부대의 고위 간부일 수도 있다고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중대한 사태라고 생각합니다. 혹여 전범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의 딸이 쓴 책이 이 땅에서 읽히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차원에서 문제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전범의 딸이라 해도 소설을 쓸 수 있고, 그 소설이 부친의 행적과 무관한 소설이라면 굳이 부친의 행적을 밝히지 않아도 상관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친의 행적과 무관하지 않은 시대를 배경으로, 또 그와 무관하지 않은 시대의 고통을 담은 작품이라면 사정이 다릅니다. 이러한 이유로, 만일 저자의 부친이 그런 직책에 있었는데도 그것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혹은 지금 추정되고 있는 것처럼 의도적으로 그 사실을 은폐한 채 소설을 썼다면, 그것은 저자의 자전적 서사의 진실성과 신뢰성을 크게 손상시키는 행위라고 판단합니다.

역사 기록물과 달리 소설에는, 특히 어린 시절에 겪은 체험을 담은 이 소설에는, 당시의 공포나 상처로 인한 착각이나 잘못된 기억, 서로 모순되는 사실에 대한 인용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성숙한 독자라면 그것들을 ‘사실’로서 받아들이기보다 소설적 변용이라고 이해할 것입니다. 이처럼 자전소설은 공식적인 역사서와 다른 방식으로 경청할 만한 경험적 진실을 일구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소설 『요코 이야기』는 우리가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과 다른 부분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러한 차이 혹은 착오가 이 소설이 지닌 나름의 의미를 전면적으로 부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일부 언론이 최근 제기한 의혹대로 저자의 부친이 731부대의 고위 간부였다면, 저자의 부친의 행적에 관련한 침묵이나 왜곡은 자전소설에서 허용되는 소설적 변용의 한도를 넘어서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부친의 행적과 무관하지 않은 시대의 고통을 주요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는 이 소설에서, 만약 저자가 부친의 행적을 드러내는 것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해서 그것을 의도적으로 감추었다면, 체험의 절실함을 내세운 이 소설의 진정성은 크게 훼손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기대하는 역사에 대한 균형감각은 고사하고 우리가 옹호하고자 하는 소설적 진실이라는 덕목에도 위배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저자의 부친에 대한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이 책의 출간과 판매를 중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는 저자의 부친에 대한 의혹이 우리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에서 투명하게 해명되어 소모적인 논란이 종식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저자 요코 가와시마 웟킨스 씨에게 서신을 보내 부친의 경력을 둘러싼 의혹을 저자 스스로 해명해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우리의 이런 결정이 『요코 이야기』의 번역본 출간에 대한 우리 사회 일각의 오해를 불식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또한 『요코 이야기』 자체에 대한 근자의 논의가 좀더 생산적이고 성숙한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7년 1월 24일

문학동네